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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유치환 문학관이었다. 나에겐 언제나 '공감각적 이미지'의 시어로 대변되는 '소리없는 아우성'의 시인이다. 특별히 어떤 감흥을 바란 것은 없었다. 그저 통영이 낳은 시인의 한 사람이었고, 나는 또한 그의 시를 읽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그의 문학관은 높은 계단을 올라야만 갈 수 있었다. 담벼락의 담쟁이가 햇살을 받아 연두빛으로 알록달록 예쁘게도 번들거렸다.
구름이 꼈지만 하늘은 맑았다. 돌계단을 따로 오르면 오른쪽으로 문학관 사무실이 있고 길을 따라 정면에 문학관이 있다. 청마문학관은 시에서 운영되는 것이다.
문학관에는 청마 유치환의 생애가 전시되어 있다. 그의 책과 글, 시, 사진, 그가 태어나서 하늘 나라로 오를 때까지의 자취를 알 수가 있었다.
문학관 옆으로 다시 돌계단이 있다. 이는 복원해놓은 유치환의 생가로 오르는 길이다. 사실은 주소지로 보았을 때 이곳은 생가터가 아니다. 생가터는 이미 도로로 편입되어 복원이 불가했다. 해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망일봉(望日峰)에 자리하게 되었다.
보존해놓은 청마의 생가는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허물기 전의 나의 외갓집이나, 친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 방학의 한 때를 그곳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마당의 이런 풍경이란... 약간은 어색했다. 적어도 나의 시골집에선 마당에 맷돌과 절구가 나와 있지는 않았다. 아무렴 어떻겠나...
생가는 단순했다. 안채와 사랑채 두 동의 건물이 다다.
안채엔 부엌이 달려 있고, 사랑채엔 화장실이 달려 있다.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을 뿐 내가 알던 시골의 부엌과도 다르지 않다. 뒤곁으로 나가는 문이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약국을 운영했다.
그래서 '유악국'이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똘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松柏)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크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언(行而不言)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新刊)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 歸故 [생명의 서] -
실제 이리까지 단출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네 생활에 비하면 얼마나 소박한가. 지금 내 방 안에는 뭔놈의 물건들이 가득한 것인지...
아궁이에서 땐 불은 굉돌 아래를 지나 뒷곁으로 난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추억이 연기처럼 아스라이 흩어진다.
뜰 안에 피어있는 초롱꽃.
가까이 통영항과 앞바다가 보인다. 난 바다를 그리워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바다를 보며 자라던 사람은 살면서 바다를 그리워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생이 다하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뇨
- 그리움 -
시인은 안그렇겠지만, 나는 시대가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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