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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통영이야기

[통영] 어느 비오는 날의 한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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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라는 이름의 기억은 아마도 내 어릴 적,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관광사진첩에서였을 것이다. 안사봐서 요즘도 있는지 모르지만 가로로 길게 넘기는 식으로 된 뭐뭐뭐 관광기념 그런식으로 나오는 책자말이다. 그 담으론 하도 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해선지 담배이름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청자 다음에 태운 담배가 한산도였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엔 옮기지 않았지만 한산도엔 그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날씨라도 좋거나 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환타지 관광코스를 탈까도 생각했을 텐데, 아침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시간도 없고 해서 짧게 한산도 코스를 선택했다. 비가 왔는데도 사람들은 아침부터 약간은 붐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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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대 볼려면 환타지 코스를 타야할 듯. 담엔 맑은 날에 찾아가 환타지를 맛보리라...

한 15분 물위를 달렸을까... 한산도에 다 와간단다... 이거 무슨 유람선이 이래... 했는데, 한산도 하선해서 한바퀴도는 것까정 합쳐서 한 시간 반이란다. 헤헷, 뭔가 속은 듯했지만, 모르고 탄 내가 바보지... 했다. 하긴 뭐 날도 안좋고 한시간 반을 배에서만 보내는 것도 답답할 듯했다. 비가 계속 오니 밖에 나가도 별볼일은 없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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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또 무슨 거북선 등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배안에서 얼핏 듣기로는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만든 거북선 등대란다.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등대 뒤로 섬의 정산에 보이는 탑은 한산대첩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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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본 한산대첩비. 하지만 저곳까지 올라가보진 못했다. 저기에도 거북선이 있는 듯했다. 날만 좋으면 저기에서 내려다보는 통영 앞바다도 멋진 그림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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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관람시간은 한 시간. 평소엔 한 시간으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비가 문제다. 기동성이 떨어진데다 사람들도 저마다 다 우산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 모두 행동이 늦다. 또 비가 온다고 해도 너도나도 다들 사진을 찍느라고 시간을 소비하니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듯 싶다. 유람선은 자주 있는지 내가 매표소에 당도하니 뒷배가 도착하여 방송을 했다. 제일 저렴한 코스라 그런지 한산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비가 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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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인 듯하다.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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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인지 때깔이 좋다. 반질잔질하고 윤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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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입구인 대건문. 정숙하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한참을 야유회를 온 회사원들이 떠들다 올라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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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제승당. 왜 제승당이 한산도 유람선의 대표 브랜드냐면, 이곳이 바로 삼도 수군의 통제영이다. 즉 장군이 거처하면서 수군을 지휘하던 장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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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의 현판. 굵은 획의 글자가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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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안은 들거갈 수가 없다. 안에는 당시의 전시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화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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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하얀 푯말 내용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충무공께서 적선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 전법으로 그중 12척을 나포하고 47척을 섬멸하시던 대승첩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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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루(戌樓) :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우국시조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이다. 1976년 신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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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루에서 내려다 본 한산만. 역시 날씨가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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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정은 장군이 부하들과 활쏘기 수련을 하던 곳이다. 멀리 보이는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미터란다. 지대 활을 쏴본 적이 없는 나로선 가늠이 안가지만 백미터 달리기를 생각해봤을 때 무척 힘든 거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양궁 남자의 경우 장거리가 90미터이니 얼마나 먼 거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안내판에 의하면 난중일기 내용 중에, 여기서 활쏘기 내기를 해서 떡과 막걸리 추진을 했다고 한다. 역시 군인들은 내기를 해야... 군시절 PX추진 내기를 하면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있지들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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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무사는 한산도 외 다른 곳에도 있다. 해남과 순천에 있는 것이 그것인데, 해남은 명랑대첩의 근거지이고, 순천은 마을의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이순신장군과 그의 휘하 장수인 정운, 송희립을 모신 곳이라 한다. 그렇다면 아산 현충사는? 또 무엇일까?

아산의 현충사는 임진왜란 이후 숙종 때 지방의 유생들의 상소에 의해 건립이 된 것으로, 장군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에서부터 혼인기를 아산에서 지냈다. 3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로 가기 전까지 예서 살았으니 현충사는 장군의 생가격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서울, 아산,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구로 다니셨으니 가히 온국민의 영웅이라 생각치 않을 수 없다. 요즘 정치인이나 직업군인들은 한번씩 그의 자취를 돌아봄이 어떨까. 떼거지로 말구 자기돈 들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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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의 현판. 제승당과 달리 매끄러운 필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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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에 모신 이순신 장군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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