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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숨은 즐거움이랄 것은 아니다. 회랑(갤러리)은 숨겨져 있지 않고 사원 본건물에만 들어서면 네 방위로 주욱 부조로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왓에 대한 글이나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간다면 뜻밖의 만남이랄까? 또 알았다고 하여도 책속에서 조각조각 보이는 이미지와 활자로 된 신화속의 이야기가 쉽게 보일리가 없기에 실재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대하는 즐거움은 의외로 크고 놀랍다.
여기서는 모든 회랑의 이야기를 다한다는 것이 무리인만큼, 동남면의 회랑에서 볼 수 있는 테마부터 재미있는 '젖의 바다 휘젖기 전설'의 내용을 중점으로 보겠다.
앙코르왓 동면회랑의 남측면은 힌두교의 창세신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태초에 악마와 선신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해오고 있었다. 이때 비슈누는 소모적인 전쟁을 종식시킬 방안으로 악마과 선신의 힘을 합쳐 생명의 바다인 젖의 바다를 휘저어 영생의 명약 암리타를 찾고자 하였다. 이로부터 회랑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젖의 바다를 휘젓기 위해서 신들은 휘저을 도구가 필요했다. 그 도구로 신들은 만다라산을 선택했고, 그것을 붙잡아 맬 끈으로 머리가 다섯개 달린 나가 바수키를 사용키로 했다.
부조의 중간위치에 있는 유지의 신 비슈누. 그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고 있었다. 비슈누가 바수키의 몸통을 가지고 만다라산을 묶어 꼭 붙잡고 있다. 비슈누의 위에는 천신 인드라가 비슈누를 도와 비를 내리고 있다. 좌측으로 악마들이 바수키를 잡아다니고 있고, 우측으로는 선신들이 역시 바수키의 몸통을 잡아다니고 있다. 아래에 있는 거북이는 바수키가 만다라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가라앉으려고 하자 비슈누는 분신인 쿠르마를 만들어 산을 떠받치고 있다. 즉 부조는 어느 한 순간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조의 좌측, 뱀 바수키의 머리쪽을 92명의 악마(아수라)들이 붙들고 휘젓고 있다. 바수키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덩치가 큰 악마는 라바나. 라바나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악마로 힌두의 창세 신화에 등장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한다. 이는 크메르인이 힌두교를 받아들이면서 고대인도의 서사시 내용을 혼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비슈누와 라바나의 중간의 아수라 그룹. 중간의 덩치가 큰 악마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부조는 햇빛에 바랜 것인지 상부와 하부가 색이 달라 보기가 무척 껄끄러웠다. 매우 아쉬운 점이다.
온 힘을 써서 뱀을 돌리느라 악마들의 모습이 좋지않다. 요즘 얘기로 열라 빡센 표정이다. 영생의 약을 나눠먹기란 이리도 힘든 일이다.
선신들 역시 힘을 모아 바수키를 돌리고 있다. 중간에 있는 덩치가 큰 인물은 악마로 젖의 바다에서 영생의 약 암리타가 나오면 훔쳐 달아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놈은 후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 비슈누의 유혹에 넘어가 암리타를 뺏기고 만다.
젖의 바다에서 태어난 천사 압사라들. 탄생의 기쁨을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다. 또는 악마와 선신의 노고를 치하하고 응원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아마도 앙코르왓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 압사라일 것이다.
바수키의 꼬리부분에서 선신들과 용을 쓰는 원숭이장군 하누만. 하누만 역시 라마야나의 등장인물이다. 꼬리 부분이 위로 올려져 깃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부조의 하단은 젖의 바다속 풍경이다. 바다속에는 많은 수의 몰고기와 악어, 용, 뱀 나가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와 선신이 만다라산을 도구로 젓의 바다를 휘젓자 바다속의 생명체들은 조각이 나고 부서져 버렸다. 좌우 악마와 선신이 있는 바다 밑은 비교적 멀쩡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슈누가 있는 중심부로 갈수록 바다속의 생물들을 갈기갈기 찟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부조는 이토록 섬세하게 신화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모르고 있으면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내용이다.
결국 악마와 신들은 젓의 바다를 휘저어 영생의 약 암리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앞써 언급했듯이 한 악마가 그것을 탈취하여 달아나 버린다. 그것을 알 비슈누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악마를 꼬여내어 암리타를 빼았고 만다.
사실 이 신화는 밑도 끝도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뭐 그렇다면 우리의 신화는 어떠한가. 단군은 곰이 낳았는데?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될 수는 있는가? 신화는 그냥 듣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더욱이 남의 나라 다른 종교가 아닌가? 아무튼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앙코르왓의 회랑에는 젖의 바다 휘젓기 전설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위는 남서면의 부조의 일부로 크메르과 샴의 전쟁에 대한 얘기로 수리야바르만2세 왕의 전승 업적을 기리기 위한 부조이다.
여기에는 특이하게 우측 하부에서 보듯이 네모난 홈이 나있는데, 본래 이곳에는 샴국 즉 태국을 안좋게 하는 주술적인 주문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후에 샴국이 앙코르 지역을 점령했을 때 이를 안 정복자는 이것을 빼내었다고 한다. 사진 상단 좌측은 미쳐 빼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원 즉 이 신전 주인인 크메르 제국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권좌에 앉아 있다. 왕은 사원과 함께 천년을 살고 있다.
비교적 하단의 부조로 사람들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맨질맨질 광택이 나는 것은 그동안의 수많은 관람객들이 만지고 간 때문이라고.
앙코르의 유물과 보물들은 천정에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굴꾼의 모두 쓸어가 천정은 모두 훼손되어 하나도 남아나질 않았다. 사진은 최근에 복원한 천정의 모습이다. 꼭은 우리네 떡살과 비슷하다.
사진처럼 공개된 회랑은 내용을 알지 못하면 그저 '아유 부조가 되게 크네...' 하고 스쳐지나기가 십상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관련내용을 알고 간다면 좀더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돌아와서 관련 책을 들춰보니 가이드가 설명했던 것과 국내서적과 또 현지에서 산 외국 서적의 내용이 약간씩은 다르다는 점을 알 수가 있었다. 해석의 차이일 수 있을 것이고 또 이야기의 구전에 의해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꼭 따져 무엇이 옳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에 중점을 두어 이해하는 것이 편하겠다.
회랑을 지나다가 담은 사진이다. 두 개의 사진을 붙여놓았더니 묘한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회랑을 지나다가 창살의 이미지가 좋아 사진에 담았다. 시선을 멀리하니 한 여행자가 휴식을취하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을 다니면 이렇게 관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자유여행자들의 모습을 종종 보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부럽기가 한이 없다. 다음 일정에 좇겨 바삐 걸음을 옮겨야하는 관광객들과는 다른 여유와 낭만이 느껴진다. 이 평화로운 신전이자 사원에서 그들과 대화나누거나 숨결을 나눌 수도 없이 그저 둘러보기에만 바쁜 일정이 원망스럽기만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만큼만 누리기로 했다.
자, 이제 신들의 거처 메루산 정상으로 오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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