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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앞바다에 독수리 바위가 있다길래 온 김에 둘러보고 확인을 하고 싶었다. 반드시 봐야 할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포항은 다녀오기가 쉬운 곳은 아니다. 아무튼 어디쯤에 있을까 여기저기 물어보았으나 정확히 위치를 말하여주는 이는 없고 해안가로 쭈욱 가보란다. 그래서 이래 저래 초소를 지키는 묻다 군인한테도 물어 결국은 찾아내고야 말았다. 호미곶에서 보면 대보항을 지나 해안도로로 따라 가다보면 '쾌응환호조난기념비'가 보이고 그 아래 독수리 바위가 홀로 외롭게 하지만 제법 멋드러기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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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수리 바위가 있는 곳은 바랑과 파도가 심한 날이면 청어가 잘 밀려나와 까꾸리(갈고리)로 긁어 담았다고 해서 '까꾸리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이랗게 생겨먹은 바위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 독수리바위로 이름이 지어졌는데, 누가 보아도 그럴듯한 독수리 모양이니 그것은 당연지사. 낙조 풍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그럴라면 반나절을 기달리든가 어디를 다녀오든가 해야는데 그렇게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위치만 확인하고 독수리와 빠이빠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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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바위 뒤에 엑스트라로 떼거지로 서있던 외로운 척 하는 갈매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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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보자면 독수리바위의 표지가 될만한 '쾌응환호조난기념비'는 이름만 듣고서는 도무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석 하단의 검은 글자를 읽어보면 대충은 알아듣겠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들이닥칠 무렵, 현재의 동경수산대학인 일본 수산강습소의 실습선인 '쾌응환(快鷹丸)'호가(풀이하자면 '유쾌한 매의 알'이란 의미인가?) 실습하러 이곳 영일만까지 왔다가 태풍으로 이곳까지 떠밀려와 좌초되었다. 그 바람에 기사 1명과 학생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사체를 화장하고 나무로 된 기념비를 세웠다가 훼손되었다. 그 후 1926년 당시 승무원이었던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이곳에 돌로 된 현재의 기념비를 다시 세웠으나 1945년 광복 후 주민들의 반일감정으로 훼손 방치되었다가, 1971년 한 재일교포의 주선으로 비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땅에 있는 것이지만 일본 사람의 것이었다. 잠깐 기분이 나빠질려고 그랬다가, 머 그들이 잘못하여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민간인들이 아닌가... 생각하니, 젊은 나이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흥미로운 사실이 이곳에 자취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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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꾸리개의 고독한 척하던 갈매기들은 내가 가까이 가자 호들갑을 떨고 날아오르다 다시 앉았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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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떼거지로 내게 날아오면 어쩌나 하는 공연한 격정도 앞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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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놀리듯이 내게서 하나둘 멀어져만 갔다. 망원이 많이 아쉬웠다.





   

Posted by 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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