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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영화를 보러 갔다

시간과 기억의 미로 ―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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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를 비추는 거울이 될 때가 있습니다. 1984년,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걸작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러닝타임은 무려 4시간. 시대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소재는 갱스터들의 성공과 몰락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범죄 이야기를 넘어서는 우정과 배신, 사랑과 상실, 욕망과 후회, 그리고 기억의 덧없음입니다. 이 영화는 갱스터 드라마의 외피를 입었지만, 결국 인생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 줄거리 ― 한 남자의 기억 속으로

영화는 데이비드 ‘누들스’ 애런슨(로버트 드 니로)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 어린 시절, 뉴욕 빈민가의 뒷골목에서 뛰어놀던 소년들.
🎞️ 금주법 시대, 술 밀매와 범죄로 이름을 날리며 갱단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 권력의 정점에 올랐으나, 욕망과 배신이 쌓이며 결국 비극을 맞이하는 순간.
🎞️ 그리고 수십 년 후, 늙은 누들스가 고향 같은 도시로 돌아와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

영화의 흐름은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 경계조차 모호한 회상이 뒤섞여 흘러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이 장면이 현실일까, 기억일까, 혹은 환상일까?”라는 의문에 빠집니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영화가 주는 여운의 핵심입니다.

 

 



🌹 사랑과 상실 ― 데보라의 테마

누들스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소녀, 데보라와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소년 시절, 문틈으로 바라보던 그녀의 춤은 순수한 열망과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누들스는 그 사랑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합니다. 사랑은 오히려 집착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남기지요.

이때 흐르는 모리코네의 음악 ‘데보라의 테마’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누들스의 가슴속 후회와 관객의 먹먹함을 함께 일깨웁니다. 듣는 순간 누구나 잃어버린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되지요.

 

 

 

 



🍷 우정과 욕망 ― 누들스와 맥스

누들스와 맥스(제임스 우즈)의 관계는 단순히 '친구'라는 말로 담기엔 부족합니다.


그들은 함께 성장했고, 함께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습니다. 그러나 맥스의 끝없는 욕망은 결국 파국을 불러옵니다.

누들스는 친구를 지키려 했지만, 동시에 그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영화 후반, 늙은 누들스가 “나는 널 배신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 그 목소리에는 우정과 사랑, 배신과 후회의 모든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 말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고백 같기도 합니다.

 

 

 



🎥 제작 비화 ― 레오네의 집념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세르지오 레오네의 집착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원작은 전직 갱스터 해리 그레이의 소설 『더 후즈(The Hoods)』.

 

 

레오네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대부〉 연출 제안까지 거절할 정도로 몰두했습니다.

🎞️  무려 10년에 걸친 준비 과정, 수많은 시나리오 초안, 그리고 뉴욕·파리·로마를 오가는 대규모 촬영.

🎞️  원래는 두 편, 총 6시간짜리 영화로 구상했으나 제작사의 압력으로 4시간 29분 버전으로 축소.

그러나 미국 배급사는 이마저도 잘라내어 139분짜리 재편집판을 내놓으며 영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당시 미국 흥행은 참패로 끝났습니다.

다행히 유럽에서는 오리지널 버전이 상영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영화사 최고의 갱스터 서사시'로 재평가받게 됩니다.



🎼 모리코네의 음악 ― 기억의 또 다른 얼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단순히 위대한 영화로 남은 이유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있습니다.

 


🎼  ‘데보라의 테마’ : 순수와 상실의 아픔을 담은 멜로디.

 




🎼  ‘아마폴라(Amapola)’ :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랑 노래.

 

 




🎼  ‘Cockeye’s Song’ :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맑고 쓸쓸한 판플루트 선율.

 




이 음악들은 단순히 장면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편린처럼 관객의 마음속에 각인됩니다. 음악만 들어도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을 떠올리면 다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 평가와 유산

처음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는 혹평과 흥행 실패로 끝났지만, 오리지널 버전이 알려지면서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로저 이버트는 이 작품을 두고 '폭력과 탐욕의 서사시이자, 영화적 서정시'라 극찬했습니다.

《엠파이어》, 《가디언》 등 유력 매체들은 지금도 이 영화를 〈대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작으로 꼽습니다.

2012년 칸 영화제에서는 복원판이 상영되어, 세대를 넘어 관객들에게 다시금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 기억의 끝에서 남는 것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줄거리를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남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는가, 아니면 파괴하는가?

  우정은 진실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혹은 이 모든 것은 단지 한 노인의 꿈, 아편 속의 환각에 불과한가?

레오네는 끝내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누들스의 애매한 미소만을 남깁니다. 그것은 절망일 수도, 체념일 수도, 혹은 아주 잠깐 스쳐가는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그 해석을 찾아야 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 마무리 ― 인생이라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갱스터 영화라기보다, 삶과 기억의 본질을 응시하는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4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우리는 한 인간의 인생을 함께 헤매며, 사랑과 우정, 배신과 상실, 그리고 시간의 잔혹함을 경험합니다.

스크린이 꺼지고 난 뒤에도 이 영화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습니다.
마치 우리 자신의 기억과 후회, 꿈과 환상이 뒤섞여 하나의 영화가 된 듯 말이지요.

🎬 결국 이 작품은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갱스터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삶과 기억, 그리고 인간 그 자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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