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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아버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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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어머니와 시골에 계신다. 시골에 내려가신 지는 아직 10년이 안되었던가... 본래 처가집인 천안 광덕에서 아버진 '기러기'로 알려진 머스코비라는 식용조류를 키우셨다. 헌데 짐승 키우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또 잘 키웠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든 팔아야 먹고 살 텐데, 판로 또한 수월하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폭설과 부화장의 화재로 기러기 농장을 접으셨다. 그리고 몇년은 삼백초 같은 약초와 고추 같은 농작물을 키우기도 하고 간간히 동네 땅을 소개해주고 구전을 받기도 하셨다. 요즘은 딱히 농사도 다른 소일거리도 없다보니 얼마전부터 틈틈히 가꿔놓은 정원에 동물상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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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개집 옆에 만들어 놓은 개. 얼마전 특정 종교의 사람들이 왔다가는 이 개상을 보고 마당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 눈이 앝아서 멀리서 보기엔 진짜처럼 보이기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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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눈은 속칭 다마(구슬)응 사용했고, 이빨은 굵은 쇠꼬챙이를 쓰신 듯 하다. 혓바닥은 건설현장에서 쓰는 파이프 연결하는 재료를 펴서 쓰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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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멋지게도 붉은 개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매우 충성스러운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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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놈의 얼룩무늬가 너무 어색한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이 개를 시작으로 아버진 틈만 나면 동물상을 제작하셨다. 한창 더운 여름날에도 뙤약볕 피해 주차장 지붕을 가림막으로 열심히 제작에 임하셨다. 나도 그런 성격이 조금 있지만 아버진 잠시라도 쉬고 있지를 못하신다. 어머니 더운 여름 한낮에도 종일 동물상을 마들고 계신 아버지를 보고 뭐러 불필요하게 땀흘리고 있냐고 푸념과 원망을 하셨지만 귀가 어두우신 아버진 들어도 못들 것처럼 꿋꿋히 여름날을 시멘트와 시름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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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두번째 작품(?)으로 추정되는 호랑이 모자. 사이즈가 실로 1:1은 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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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개에 비해서 많이 비현실적으로 생겼지만 호랑이처럼은 보인다. 개와는 달리 옷단추로 눈을 박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지나가던 어느 기업체 사장쯤 되는 이에게서 백만원인가 이백만원인가을 부르게 했던 수작이다. 하지만 아버진 뭐 이딴 걸 돈주고 사려느냐고 거절하셨다고... 이거 가져갈라고 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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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호랑이의 모습은 너무 안생겼다. 생기다만 새끼를 낳은 것인지... 새끼가 이빨도 났네... 내가 이놈이라면 좀 서운하겠다. 만들려면 좀 제대로 만들어주지 이거 뭐 대충 덩어리만 주물럭거린 모냥으로 만들어놓았느냐고 말이다.

아버진 지나가던 이의 생각지도 않던 호응에 힘을 얻으셨는지 새로운 작품활동에 들어가셨다. 호랑이를 만들었으니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 사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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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황금빛의 아주 용맹스러운 표정이다. 예전에 황금사자기쟁탈 고교야구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프로야구가 있기전에 고교야구와 실업야구가 인기 좀 있었는데... 암튼 사자는 갈기를 표현하기가 어려우셨을 거란 것을 저 올백으로 넘긴 마빡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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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눈마저 황금색이다. 금색 락카가 몇 통은 들어갔겠다. 사자 역시 새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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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떨없는 강아지거나 곰처럼 생겼지만, 설마 사자 앞에 강아지나 곰새끼가 있겠는가. 저건 사자 새끼가 틀림없다. 하지만 호랑이 새끼와 마찬가지로 생기다 만 듯 하다. 뭐 사람도 커가면서 달라지고 모양이 나는데 더 자라보기를 기다려보자.

아버진 맹수의 제왕인 호랑이와 사자를 만들고서는 아마도 뭔가 색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버진 절은 다니지는 않지만 부처님이 새겨진 악세사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스스로를 불교신자로 믿고 계신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달마도사에 도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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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의 가사를 입으신 달마도사님. 수염이라도 있으면 더 그럴 듯 하련만... 젊은 시절이라기엔 배와 가슴이 너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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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의 가슴은 어머니의 가슴을 생각하고 만드셨다는 후문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유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아버진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혹은 뭘고 이런 조형물을 만들었을까에 의문을 갖고는 한다. 생각해보면 저 큰 것이 모두 찰흙이거나 시멘트라면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걸 옮기기에도 문제가 많고 결국 그 자리에서 작업을 하셨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조금 상상을 해본다면 속은 비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무게도 그렇고 비용절감 차원에서라도 저 속은 비어야 마땅하다. 결국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우선 철사와 신문뭉텅이를 가지고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덮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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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를 바르고 건조중인 곰이다. 어느 여름날 시골에 갔을 때 마침 아버진 작업중이셨다. 건너편엔 빨리 마르게 하기 위해 틀어놓은 선풍이가 보인다. 선풍기는 건조에도 필요하지만 아버지의 열기를 식히거나 조형물을 갈아낼 때 발생하는 먼지도 날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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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단계의 개. 일단 대충의 모양은 낸 상태다. 이때까지는 모래를 섞은 시멘트를 사용한다. 실제 개가 두려웠는지 우측으로 아주 피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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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재료. 시멘트와 그라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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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삽과 칼, 붓 등. 이런 것들은 마감단계에 필요한 것들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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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건조되어 아버지가 구상했던 위치에 자리한 곰.

아버진 소조를 배운 일이 없다. 젊은 시절 사촌 누이의 도움으로 잠깐 입학도 안한 모 예술대학을 다닌 일은 있으나 몇 달 다니다 말았으니 미술을 제대로 배웠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아버진 그림에 소질이 있어 어떤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일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보기론 현대미술과는 거리가 좀 있는 탱화 같은 수준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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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난 이것들이 반달곰이나 되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진 애초부터 팬더곰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크기로 봐선 부모자식 지간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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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의 눈알도 구슬을 사용했다. 제법 순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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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황금돼지해인 올해를 기념하려는 듯 바로 그 황금돼지도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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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한 가족이 집안을 바라보고 들어오고 있다. 아마도 복이 집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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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은 웃고 있다.

이밖에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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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두꺼비를 좋아하셨다. 어렸을 적에도 이런 황금두꺼비가 TV위에 놓여져 있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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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진짜 황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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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땅의 동물들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은 모양이다. 두루미인지도 모를 새가 가짜 소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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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놈을 봤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코알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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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만들거야 없지만, 코알라를 만드실 거라곤 생각 못했다. 우리의 생각에는 흔하게 떠오르는 동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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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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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지어진다. 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라. 맞은 편에 아버진가 만든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안엔 어쩌면 백마리가 넘을지도 모르는 금붕어와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 근데 아랫배는 왜 만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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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혀 아이 같지 않은 아이의 쌩뚱맞은 표정... 입술이 있는 곳 쯤에서 턱을 만들고 코를 좀더 짧고 작게 했다면 조금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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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싸는 아이의 엄마쯤 되어보이는... 얼굴의 나체녀... 가슴이 아주 육감적이기는 하나 황금색이라는 것은... 도무지 안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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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다리를 보라... 저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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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아이의 엄마는 인어였던 것이다. 역시 아랫배를 잡고 있는 것이... 의문스럽지만 이것으로 아이의 엄마임이 입증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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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하는 토끼와 거북이인지 별주부전의 한장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도 있다.



아버진 오늘도 어떤 작품을 시멘트로 만들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는 반복되는 작업과 소재를 상상하는 것이 귀찮아 손을 놓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어머닌 나이들고 힘없는 당신의 남편이 틈만 나면 밖에 나가 시멘트를 주물럭 거리는 것이 여전히 못마땅하실 테지만 굳이 말리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곧 가을도 언제인지 모르게 지나가 버리고 날씨마저 추워지면 이 일도 당분간은 못하실 것이다. 뭐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이것을 만드는 동안 아버진 잡생각이 없고 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들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웃음을 짓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 아버지의 수고스런 작업이 헛일은 아닌 듯 싶다.

아무리 풍요로운 삶은 산다고 해도 무료한 삶이란 오히려 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비록 풍족한  것이라고 도시보다는 맑은 공기일 뿐, 편안할 거 별로 없는 시골의 생활이지만, 이렇게라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자주 찾아 뵐 수 없고 전화만 가끔 하는 아들에겐 무척 다행이다. 건강을 해치는 정도로 몰두해서 하시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어머니와 함께 드라이브라도 해주시는 센스를 자주 발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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