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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친친국수

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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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국수 한 그릇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한 끼 적당히 떼우는 데 용이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만하다. 간혹은 면이나 건더기를 많이 남겨 맘이 상하기는 하지만 뭐 내 국수가 입맛에 안 맞는다거나, 혹은 면을 잘 못 삶았을 수도 있다고 판단을 한다. 아직은 초보 국수 장수라 실수가 잦다. 그래도 두 번 세 번 찾아주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즐겁다.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70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가게로 오셨다. 행색은 좀 추레해 보였는데 그렇다고 손님이 아닌 것은 아니니 주문을 기다렸다. 저녁을 먹자니 배도 안 고프고 안 먹자니 배고플 것 같고 해서 국수 하나 먹으러 왔다고 했다. 양을 많이는 주지말라 하셨다. 가게 건물 옆 건물 인근 주택에 사신단다. 소고기 국수를 시키시고는 조용히 묵묵히 국수를 기다리셨다. 저녁 시간이라 따로 데운 물이 없어 시간이 좀 걸렸다. 양을 많이 주지 말라고 하셨지만 또 적게달라는 말도 아니니 그저 정량의 면을 삶았다. 그리고 찬물에 헹구고 다시 데치고 면위에 고명을 얹고 뜨거운 육수를 부어 국수를 내어드렸다. 

국수를 맛있게 먹는 사람은 소리부터 다르다. 정말 '후르륵' 소리가 들린다. 물론 천천히 수저에 면발을 올려 조용히 먹는 사람도 있다. 먹는 사람은 모르겠는데 보는 국수 장수는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어르신은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잘 드셨다. 그러고는 잘 먹었다며 꼬깃한 돈을 건네고 가셨다. 그릇엔 국물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시장하지 않은 사람이 먹은 그릇 같지는 않았다. 뭐 내 국수가 썩 맛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어르신 입맛에는 맞았나보다. 국수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빈그릇을 보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기분 좋은 손님이다. 

 

언제인지 고등학생 손님이 혼자 가게로 왔다. 국수를 시키고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내내 보았다. 가게엔 손님도 혼자 주인도 혼자, 라디오만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이 꿇고 환풍기가 돌고 면이 삶아지고 조금 지리한 시간이 흘러 국수 한 그릇이 뚜욱딱 만들어졌다. 후르륵 후르륵. 예의 소리가 라디오 음악만이 흐르는 가게 안에 퍼졌다. 나한테는 음악보다 더 듣기 좋은 소리다. 배가 고팠는지 소리가 더 명확하고 컸다. 식사를 다 마치고 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먹을 만 해요?  

홍대 ㅇㅇㅇ 국숫집이 있는데요, 거기보다 맛있어요.   

이런 영광이 다 있나. 오픈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초보 국수 장수에겐 더없는 찬사였다. 학생이 간 뒤 그릇을 치우러 테이블로 갔다. 

정말이지 깨끗하게 먹고 갔다. 이런 손님만 있으면 돈 안 벌어도 좋을 것 같다.

  

외국인 단골이 있었다. 요즘은 안 보이지만 오픈 초기 외국인 커플이 곧잘 찾고는 했다. 여자는 비빔국수나 닭개장 같은 얼큰하고 매운 국수를 주문했고, 남자는 늘 소고기국수를 주문했다. 첫 방문 때는 실내에서 먹었는데, 답답함을 느꼈는지 주로 밖에 있는 파라솔에서 국수를 먹었다. 그들은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천천히 먹었다. 늘 책이나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국수를 다 먹고도 바로 가는 일이 없다. 한가롭게 앉아서 햇볕과 바람을 친구 삼아 한동안은 쉬었다 갔다. 말했듯이 남자는 소고기국수를 주문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릇을 싹싹 비웠다. 

 

아마도 소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 같다. 그런데 요즘은 잘 안 보여서 아쉽다.  

 

가게에서 보기좋은 그림은 가족이 방문을 하였을 때이다. 엄마와 아이, 아버지와 딸, 부부... 같은. 수도관에 문제가 생겨 부품을 사러 청계천을 가야했다. 동네에 있는 철물점에서 산 부품은 맞지가 않아서였다. 노동절 날이라 손님도 많지 않아 친구만 가게에 남겨 두고 서둘러 다녀왔다. 배도 고프고 해서 근처 만둣집에서 김밥과 만두를 사들고 들어왔는데 친구가 얘기했다. 

너 나가 있는 동안에 한 엄마랑 아이가 왔었는데, 아이가 국수를 안 먹는다고 해서 엄마만 소고기국수를 시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국수를 삶아 말아주었지. 아이가 근데 엄마가 먹는 걸 빤히 보니깐, 엄마가 먹어볼래 하면서 주니깐 맛있다며 잘 먹는 거야.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눈을 피하지도 않고 계속 국수를 먹는 거야. 하도 맛있게 먹어서 나도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계속 쳐다봤다니깐. 설겆이도 못하고. ㅎㅎㅎㅎ

  

사실 식당을 하는 일은 꽤나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손님들을 만나면 잠깐이지만 고됨을 잊고 햄복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만든 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고 배가 부를까만, 그래도 국수를 먹는 잠깐의 시간 동안이라도 내가 느끼는 행복감의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손님이 더 많아져서 돈도 벌면 더 행복할 것 같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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