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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친친국수

산 국수 죽은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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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시작하고 며칠 지나서였다. 아직 점심 손님들이 채 빠지기 전 한 할머니께서 가게 현관 앞을 기웃거리셨다. 나가서 들어오시라 했더니 누구 찾으신단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없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분은 안 오셨다 얘기하니 알았다면서 발길을 돌리셨다. 그래서 그러고 말았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할머니는 또 오셨다. 재차 물으셨다. 아직 그런 분은 오시자 않았다도 말씀드리자 다시 되돌아 가셨다. 난 그저 사람을 찾나 싶었다. 

또 얼마가 지났을까? 한 할아버지께서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서 가게 쪽으로 오셨다. 추측에 아까의 할머니가 찾던 분이리라 생각하고, 아까 할머니가 찾으시던데요? 하고 물으니, 알아 알아... 하셨다. 보니 아까 할머니가 뒤로 한두 걸음 떨어져 오고 계셨다. 어찌 되었든 두 노인 양반이 가게를 찾았다. 할아버진 소고기국수를 주문하였고 할머닌 안 먹는다 하셨다. 아마도 때가 지난지라 이미 식사를 하셨을 것이었다. 생각에는 할아버지가 씹으시는 데 국수발이 부담스럽지 않게 하려고 충분히 익혀 국수를 냈다.

아버지는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이가 점점 안 좋아져 잘 씹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외식을 하면 짜장면이나 잔치국수 같은 별로 씹지 않아도 훌훌 잘 넘어가는 면 종류를 선택 하셨다. 자주 오는 외식도 아닌데 어머니 매번 면을 선택하는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나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닌 가끔 타박도 아닌 회한도 아닌 푸념도 아닌 얘기를 하셨다. 니 아버진 맨날 나가면 짜장면 아니면 국수만 드셨다.

암튼 난 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해서 그저 편히 드시라고 면을 충분히 익혔다. 때론 급히 익히거나 손님이 몰릴 때 덜 익은 면이 나간 적도 있어 아예 익히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하였다. 국수를 말아드리고 좀 한가해지자 난 가게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쐬었다. 국수를 삶는 일은 후끈한 증기와의 싸움이기도 해서 짬이라도 나면 선한 바람이 그리워 곧잘 그러곤 했다. 그렇게 몇 분을 서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할아버지께서 친구에게 물었다. 국수는 누가 삶았냐는 것이다.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답했다. 난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얘기가 이어졌다.

이건 시장 국수여. 국수를 삶을라면 탱탱하게 쫄깃쫄깃하게 살아있는 국수를 끓여야지 이건 죽은 국수여. 산 국수를 끓이라고. 이건 죽은 국수, 시장 국수여. 내가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끓이기도 잘 끓여. 내 마누라한테도 물어봐. 내가 집에서 얼마나 잘 끓이는지...

아차 싶었다. 물론 매번 탱글탱글하고 쫄깃쫄깃한 국수를 뽑을 만큼 삶는데 숙련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익힌 것이 할아버지에겐 오히려 맛없는 국수를 드시게 했던 것이다. 여러 명의 국수를 삶을 때는 퍼지기가 십상이지만, 그때는 할아버지 1명분만 끓였던 것이라 그래도 나름 탱탱한 면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데 일부러 생각한 것이 의외의 평가를 받게 만들었다.

내 다시 올 테니, 그때는 산 국수를 내와봐.

할아버진 그렇게 가게를 떠나셨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약간은 힘겨운 걸음을 걸었다. 저리 힘든 걸음으로, 동네에 국숫집 하나 생겼다고 맛보러 오셨는데 실망을 맛보게 하다니... 앞으로는 국수 삶는데 신경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괜한 추측으로 일부러 더 삶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탱탱한 국수라도 천천히 먹거나 조금 시간을 두고 먹으면 이내 불어 죽은 국숫발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결국 내 숙제는 늘 탱탱한 살아있는 국수를 삶아내는 것이다. 백 번을 삶으면 백 번이 다 쫄깃거리는 면발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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