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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성물기행

[性物紀行] 김포의 미륵바위 전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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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는 김포에 있는 두 개의 미륵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미륵당이란 미륵바위를 모셔둔 집(堂)을 말하는 것으로 미륵바위란 기자석(祈子石)을 의미한다. 기자석이란 무엇인가? 아이(아들)가 없는 집의 부녀자들이 치성을 드려 회임을 기원하는 바위가 아니던가. 그런 바위가 김포에 두 개가 존재한다고 했다. 책과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에 의하면 김포 대곶면 초원지리 미륵당과 통진읍 가현리 미륵당이 그것인데, 김포는 김포공항과 아주 오래전 강화 인삼장에 갈 때, 그리고 과거 출판사 영업사원 시절 김포에 있는 모 대학에 드나들던 일이 고작이라 그 바위들을 찾아가려니 사실 좀 막막했다. 하나만 찾는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것이었으나, 또 하나를 더 찾아야하고 헤매어도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매일 주차장에서 쉬고만 있는 애마를 오랜만에 끌고 나가 보았다.


대곶면 초원지리 미륵당

우선 그래도 거리상 가까이에 있는 대곶면 초원지리의 미륵바위를 찾아보려 했다. 내비로 미리 찍어보니 그리 차이는 없으나 자동차로 몇 분이라도 가까웠다. 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니 그저 초원지리라는 지명만 찍어 출발을 하였다. 강변북로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 김포 방향으로 난 국도에 들어섰다. 필자가 예전에 다니던 길과는 많이 차이가 났다. 좌우로 길이 더 많아졌고 더 넓어졌다. 내비의 안내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간동 입구’라는 푯말이 보였다. 초원지리는 과거 ‘간동마을’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 대충 찾은 미륵바위가 있는 곳을 찾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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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동사거리 부근에 있다.

일단 마을에 들어섰다. 논이나 밭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상가와 집 그리고 공장이 많이 보였다. 이곳은 이미 개발로 주택보다는 공업단지화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이래가지고는 도무지 찾을 방도가 없다. 일단 아무 가게나 들러본다는 것이 제법 규모가 큰 철물점을 찾았다. 그래, 초원지리가 어디냐? 물으니 마침 여기가 초원지리란다. 그럼 미륵당이라고 아시냐? 물으니 마침 그곳에서 걸어도 되는 곳에 있다 한다. 하지만 잠겨 있으니 보기는 어려울 것이란다. 전에도 어느 대학의 교수와 왔더란 말도 하면서 열쇠를 가지고 일을 법한 집을 하나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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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었던 초원지2리 마을회관

하지만 그것은 추측뿐이었다. 알려준 준 집을 찾아가니 훤히 눈앞에 보이는 한 작은 슬레이트 지붕의 벽돌집을 가리키며 미륵당임을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열쇠는 그 집에 없었다. 멀리보이는 고개에 있는 마을 회관에 가보시오 하길래 찾아보았더니 회관은 문이 잠겨 아무도 없었다. 이라 왔다갔다 하자니 차를 가져오긴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열쇠를 못 찾은 이상 그저 헛걸음일 뿐이었다. 어쩐다... 잠깐 고민을 했으나 우선 위치나 확인해보자 하고 미륵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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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뒷담 뒤로 작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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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건너편엔 동명상사라는 자재업체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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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맞은 편 사잇길로 오르면 이와 같은 벽돌집이 있다.

한 오리전문점 뒤에 있는 밭 사잇길에 자리한 미륵당은 푸른색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 넓은 벽돌과 섀시 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은 들었던 대로 잠겨 있었고, 주위환경은 말끔하지 못했다. 눈앞에 두고 그대로 가자니 참으로 아쉬웠다. 그렇다고 마을회관에서 넋 놓고 기다리자니 대책이 없고, 무조건 아무집이나 들러 물어보자니 그것도 막무가내인 것 같았다. 그런데 미륵당을 한 번 둘러보니 좌측 벽으로 조그만 창이 하나 달려 있었다. 슬그머니 손을 들어 밀어보니 문이 열렸다. 머리도 들어가지 않는 그 창문으로 힐끗 시선을 넘겨보니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다 플래시를 터뜨려 무조건 찍어보는 것이다. 결국 몇 번을 거듭한 끝에 사진과 같은 미륵바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 기원을 드린 것인지 제물이 제단에 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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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편에 난 창으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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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바위. 제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초원지리의 미륵당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간동마을은 광주이씨의 집성촌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90년 전 마을 노인들이 우연히 산에서 이 미륵바위를 발견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방치해두었다. 하루는 한 유지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바위를 가리켜 돌부처를 잘 모시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동생과 함께 이 바위를 잘 모셔두었다. 다음날 신령은 다시 나타났다. 주근에 돌부처의 머리가 있으니 찾아서 함께 잘 모시라 일렀다. 신령의 말대로 부근의 땅을 파보니 부처의 머리모양을 한 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 모셨다. 그 후로 백년 뒤 부근 마을의 딸만 둔 사람이 이 바위를 찾아 치성을 드렸다. 보름동안 기원한 결과 아들을 얻을 수 있었고, 2년 뒤 또 아들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한 짓궂은 사내는 동생과 함께 이 미륵바위의 가슴팍을 돌로 수없이 내리쳤는데, 다음날 그들의 가슴이 부어올라 3일을 앓았다고 한다. 또 어떤 노인은 할머니가 이곳에 치성을 드려 자신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들은 모두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현재의 미륵당은 1981년부터 광지 이씨 문중에서 벽돌집을 만들어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통진읍 가현리 미륵당

간동마을(초원지리)의 미륵바위를 확인한 후 통진읍 가현리의 미륵바위를 찾았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부근의 한 단지 내 공장을 알려주었다. 정확한 번지가 아닌 ‘가현리’만을 찍은 탓이었다. 결국 감으로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부근의 부동산에 문의를 해서 가현리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허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해법은 사람을 만나 묻는 일이다. 먼저 한 식당을 찾아 물으니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자신은 잘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 위에 있는 한 슈퍼를 추천해주었다. 슈퍼를 찾아 물으니 이 주인은 다행히도 미륵당을 아는 분이었다. 하지만 점심때라 자신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이리저리 전화를 하더니 안내를 대신 해줄 한 아주머니를 소개해주었다. 일전에도 서울서 바위를 찾아온 경우가 있었다며 친절하게도 알려주었다. 마을 주민의 차를 따라 미륵당 부근에 도착해 잠깐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은 마을에서도 미륵당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몇몇 노인분들만이 1년에 한 번 정도 찾아가 기도를 올리는데, 공장이 들어서서 길이 없어져 이전처럼 편하게 오갈 수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땅주인이 미륵당을 철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 없어질지 몰라 적잖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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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철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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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기연 사이의 수풀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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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소 밑에 푸른 천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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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의 푯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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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안내문이...

가현리의 미륵바위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한 공단의 공터 넘어 구릉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철강과 동인기연 사이에 넓은 공터가 있고, 그 아래로 작은 골짜기가 있으며, 그 넘어 숲속에 집이라고 하긴 뭐한 천막을 친 가건물이 있어 그 안에 모셔져 있었다. 다행히도 문은 잠겨있지 않아 미륵바위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가현리의 미륵바위 역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볼 수 있다. 미륵바위 앞에는 과일과 향로 촛대, 과자, 국수 그리고 보시함이 있어 지폐와 동전이 들어 있었다. 가현리의 미륵바위는 초원지리의 것과 크기는 비슷해 보이나 좀더 매끈해 보였다. 그리고 둘 다 기자석의 의미는 있으나 성기 모양을 찾기에는 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바라보니 대충은 길쭉한 모양이 보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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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건물 안에는 미륵바위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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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제물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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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리 보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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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본다면 남근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현리의 미륵바위 역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약 90년 전, 가현리로 시집을 왔던 한 할머니의 꿈에, 마을에 있는 우물에 돌이 올라와 자신을 잘 모시라 해서, 잠을 깨고 우물을 찾으니 실제 돌이 올라왔더라. 그래서 마을 장정 넷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 모시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은 동네 주민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앞서 마을 주민의 이야기처럼 1년에 한 번, 이를 아는 노인분들이 찾아 제사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언제든 이곳을 찾아 기원을 할 수 있게 문을 걸어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초원지리의 미륵바위나 가현리의 미륵바위는 당(堂)을 짓고 마을 단위에서 모셔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같이 꿈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존재가 알려지고 치성을 드린 결과 자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두 개의 미륵당은 현재 김포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다만 아쉽다면 그 내력을 아는 이들이 점차 줄고 있다는 현실이고, 그들마저 세월이 흘러 사라진다면 결국 이들 바위는 잊혀지고 방치되다가 이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토속 신앙과 민속자료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것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니 지자체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 그 보존과 전승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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