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있는 명산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는 매우 잘 알려진 기도터이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무학대사와 이성계 그리고 정도전에 연관된 이야기도 흐르고 그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영험한 기운이 넘쳐 흘러 곳곳에서 소원을 비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성물기행’의 타이틀에는 사뭇 주제가 다를 수 있겠으나 인왕산 선바위 역시 기자신앙의 중심에 있는 곳이므로 찾아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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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나오면 안 된다. 그냥 찍어본 거다.


인왕산 선바위는 여태의 다른 성물에 비해 찾아가기가 참으로 수월하였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선바위길’, ‘인왕산 국사당’, ‘선바위’ 등의 친절한 표지판이 갈 길을 안내해 준다. 낮은 주택가 건물 사이를 지나면 무악동사무소가 나오고 그 옆 계단을 오르면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있으며 아스팔트 포장로를 따라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면 단청이 산뜻한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이 떡하니 서서 오가는 손님을 반기고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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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선 바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인왕사 종무소를 거쳐 계속 가파른 길을 오르면 중요민속자료 제 28호인 인왕산 국사당을 만나게 된다. 인왕산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그리고 여러 신을 모시는 무속신당(巫俗神堂)으로 본래는 남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일제 때 그들의 신당을 남산 기슭에 지어놓고 그보다 높은 곳에 있던 국사당을 이곳 인왕산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지들 신보다 높이 있는 것이 꼬았다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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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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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두리번 거리니 이와 같은 바위의 머리가 보였다.


국사당을 지나 외편으로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면 우리가 찾는 선바위가 서울시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바위의 성질은 일전에 찾아본 북한산 독박골의 천녀바위와 흡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전체적인 모양은 두 사람이 다소곳하게 앉아있고 한 쪽이 다른 쪽에 어깨를 빌리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 만나게 되면 뭔지 모를 기운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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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선바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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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기댄 연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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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찾아간 점심 무렵엔 이미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에 임하고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도 사람들이 계속 들고 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홀로 찾아온 중년의 남자에게 조심스레 찾아온 연유를 물어보았는데, 바위에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고 소문을 멀리서 듣고 그의 어머니께서 암투병중이라 건강회복을 빌러 왔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가 서너 명의 중장년의 여자들이 내려가자 연유를 물으려 쫓아 내려갔지만 막상은 차마 그것을 물어보지 못하였다. 혹여 그들이 아이를 원하여 기도를 했다면 필자의 물음으로 부정을 탈까 두려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런 내용이라면 낯도 모르는 남자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던 것이다. 아무튼 바위를 찾는 사람들 중 여자들이 많다는 것에서도 기자암(祈子岩)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선바위의 하단에 기자의식 중의 하나인 붙임의 표시인 성혈을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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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을 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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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의 모습은 방향을 달리 할 때마다 모양이 달라진다. 특히 우측의 바위는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서 참선을 하고 있는 모양을 닮은 데서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는 명칭이 생겼다 한다. 혹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말과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말도 전해져 내려온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을 받아 성도를 찾아다니다가 500년 도읍지인 지금의 서울을 찾았으나 그 수명이 길지 않음을 한탄하여 이곳 선바위에서 천일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도성을 쌓을 때 개국공신 정도전은 바위의 영험함에 불교가 성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도성 밖에 두고자 하였고, 반대로 왕사인 무학대사는 도성 안으로 두기를 희망하였다. 태조는 두 인물의 주장에 결정을 못하고 있다가 꿈을 꾸었는데, 도성에 눈이 내려 쌓이고 있었는데 선바위 안쪽으로는 눈이 녹은 것을 보고 도성 밖으로 둘 것을 정하였고, 이에 무학대사는 조선에서 불교의 세가 떨어질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누가 보아도 특별한 이 선바위에 충분히 있을 만한 전설이며 이야기들이다. 그러한 역사적 이유가 많은 탓인지 선바위는 여태까지의 성물과 비교 이례적으로 서울시 지정문화재 민속자료 4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시 뭐든 권력과 가까워야 살아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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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험함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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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가볍게 내린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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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하늘을 향해 불쑥 발기한 남근처럼도 보인다.


국사당을 비롯하여 선바위의 아래 위로는 많은 기도암과 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주변의 상서로운 바위틈에는 기원(기자)의 촛불을 올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필자가 찾은 날에도 무슨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꽹과리 소리와 함께 내용을 알 수 없는 염불을 외는 기도가 진행 중인 곳도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종로구청에서는 인왕산공원 내에서 기도와 무속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인데, 아무래도 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에 애초에 법으로 막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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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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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선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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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이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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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중 이런 예쁜 빛깔의 꽃을 보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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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만두바위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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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본 선바위, 마치 다정한 부부의 뒷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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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청와대가 있어 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입산이 금지되었던 인왕산은 93년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개방이 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필자의 발걸음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내침 김에 인왕산 정상을 찾아보기로 했다. 선바위 뒤로 여러 가지 기암이 보였고, 출입금지 푯말을 피해 우측으로 돌라 산을 오르니 군부대와 경계병이 보였다. 필자도 다녀온 군대지만 별로 가깝게 대하기 싫은지라 우회하다보니 어느덧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그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던 인왕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더라도 기암괴석과 숲으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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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의 정상이 눈 앞에 있다.


정산을 코앞에 두고 산길을 오르려는 순간 똑같은 사복에 모자를 쓴 군인들이 길을 막았다. 필자가 산을 찾은 날은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은 휴식일로 입산이 금지된단다. 이런 사실을 모른 산행초보는 이미 입산 금지된 곳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어쩐지 아무리 평일이지만 사람들이 영 없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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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분위기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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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비친 나뭇잎으로 시선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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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여운 친구를 만나는 일도 즐겁다.


아무튼지 하산길은 예전에 다니던 직장이 있던 부암동으로 정했다. 부암동은 종로구에 속해있는 고즈넉한 동네로 개발이 제한되는 탓인지 높은 아파트는 없는 주택가이다. 교통편이 안 좋은 것을 빼면 조용히 살기에는 괜찮은 동네다. 이 부암동의 동명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동이름인 ‘부암(付岩)’은 ‘붙임바위(부침바위)’를 뜻하는데 이 동네에는 예전에 커다란 붙임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붙임바위란 무엇인가? 아들을 얻고자 했던 아낙네들이 영험한 바위에 돌을 문질러 그 돌이 바위에 붙었을 때는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가진 것이 아닌가. 그 붙임바위가 바로 이동네 있었다는 것이다. 무려 2미터나 되는 바위란다.

하지만 이미 그 바위는 현재 없다. 도로확장으로 없어졌다고 하는데 어떠한 작은 근거라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0여 년 전의 자료에 의하면 부암동사무소엔 이 바위의 사진이 있다고 했으나 그때와는 구조가 달라졌거나 내부를 새로 바꾸었을 가능성이 많았다. 실제로 동사무소를 찾아 사진의 존재를 물으니 지금은 없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터에 대한 표식은 존재하여 부암동 경로당 바로 앞에서 붙임바위의 기억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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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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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5 07: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부침바위'의 모습을 담은 일제강점기 때 사진을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관심이 있을 것 같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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