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배 선수를 만난 건 2006년 1월 한참 일본 프라이드의 이벤트 경기에서 승승가도를 달리던 최무배 선수가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인터뷰 후에 안 일이지만 매니지먼트 회사와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회피했기에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많은 순박한 운동선수들이 그렇듯 최선수도 이용을 당했거나 불합리한 계약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저 나의 추측일 뿐이다. 얼마전 그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모르겠다. 이것을 기회로 연예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데... 강호동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진정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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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종격투기의 대표선수 최무배, 2004년 2월 일본의 세계적인 이종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PRIDE)의 이벤트 경기 무사도(武士道)2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프라이드 진출 선수로 일본의 아마레슬러 출신의 이마무라 유스케 선수를 4분 6초만에 리어네이키드초크로 승리를 따냈다. 이후 5월 프라이드 무사도3에서 야마모토 요시히사에게 경기내내 우세한 전력을 펼쳐 심판 전원 판정승을 거두었고, 6월 국내에서 열린 국제경기 글라디에이터에서 러시아의 무라드 아마에프에 레프리스탑승을 거두었고, 10월에는 본경기인 프라이드28에서 열세한 경기를 펼치던 중 2라운드 4분50초 기적같은 역전 초크슬리퍼승을 따내었으며, 12월 프라이드 남제-운명전에서는 브라질의 거구 자이언트 실바에게 암트라이앵글초크승을 거둠으로 프라이드에서 파죽의 4연승을 거두면서 일약 한국의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프라이드29에서 프라이드의 4강 러시아 특전부대 출신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에게 아쉬운 패배(레프리스탑)를 당한 후, K-1으로 옮겨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미국 선수 프레데터와 대적했으나 열세를 면치못해 결국은 판정패를 당했다.

전적 7전 5승 2패의 한국의 이종격투기 대표선수 최무배,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이종격투기라는 장르가 그리 대중적이진 못한 경기이지만 그는 이전에 이미 국가대표 레슬링선수로 국제 대회에서 수상을 한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씨름 선수 최홍만이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이종격투기에 입문한 반면, 그는 언제인지 모르게 또 묵묵히 승리를 다져 지금에까지 왔다.

이런 최무배 선수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알아보러 그의 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은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 지역의 작은 빌딩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아마도 레슬링과 격투기라는 특수성도 있는 듯 했다. 마침 여성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제 운동을 시작한 분들이었는지 낯선 사람에 대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실제로 본 최무배 선수의 모습은 생소하진 않았지만 매스컴에서 보는 모습과는 달랐다. 그저 주위에 익숙한 덩치 크고 몸이 좋은 순한 친구 중의 하나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럼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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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배 선수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홈페이지 프로필을 보면 건어물 시장 이야기나 아이들이 놀려도 화를 내지 않는 순한 이미지로 표현이 되었는데...

부모님께서 부산 남포동에서 건어물상을 하셨는데, 5형제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딸을 바라셨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에도 덩치는 큰 편이었다. 그때 흔하지 않았던 유치원을 다녔는데, 한 해 일찍 들어간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높이는 컸었다. 그래서 시비를 걸거나 하는 친구는 없었고,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다.
 
사실 사이트에 적은 태몽이라든가 친구들이 놀려도 오히려 멸치를 먹으라고 권했다는 얘기 같은 어렸을 적의 기억은 잘 나지는 않고 이모나 주위 어른들께 들은 얘기들이다.

소심하고 순하게 자랐고, 운동선수가 되어 시합을 하기 전까진 남하고 싸운 일이 없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는지.

어려서부터 그냥 운동하는 것은 좋아했다. 동아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미술부 활동을 했었는데, 씨름부 감독님이 자주 씨름부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그때는 별로 생각이 없어 도망다니고 버티고 있다가, 어떻게 부산 체고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거기서부터 레슬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에 심취를 했다고 했는데, 어떤 밴드나 아티스트를 좋아했나?

주로 당시 유명했던 기타리스트 주류였다. 잉베이맘스틴, 스콜피온스, 오지오스본, 밴헬렌... 밴드도 할려다가 말았다. 지하실에 연습실도 만들고 그랬는데... ^^


대학 시절 독서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한달 독서량은 얼마나 되는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나, 최근에 읽었던 인상적인 책, 좋은 책은?

요즘은 책 못 읽는다. 사실 스토리 위주의 책들보다는 이를 테면 행동학 같은 인문 이론서나 자연과학류의 도서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감명깊은 책은 떠오르는 것은 없는데, 다쳤을 때 생각이 나는 게, [딥임팩트]라는 영화에서 임무를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선장이 눈멀은 부하에게 [모비딕]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 때 그 책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추어 레스링 시절 국가대표 성적은 어떠했나?

대회 성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90년 아시안 게임 그레코로만 100kg급 동메달. 동년 아시아 대회 동급 동매달을 획득했다.

당시 내 라이벌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송성일 형이었는데, 둘이 번갈아가며 국가대표를 들락날락했다. 송성일 형은 95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93년 동아대 졸업시 30만원 상당의 시계를 분실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시계이길래 프로필의 한 줄을 장식했나?

졸업 기념 시계였다. 학교에서 공로상으로 준 시계였는데 졸업식 때 받아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잃어버렸다. 당시로는 비싼 시계라 아쉬워서 적어놓았다.


국가대표 이후 생활은 어떠했나?

국가대표도 해보고 국제대회에서 메달도 따보고 국내 레스링계에서 나름대로 최고 클래스로 경험을 했는데 결국 국가대표를 떠나고나면 레슬링이란 별 의미가 없었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아도 레슬링 가지고는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고, 미래가 없었다. 그래서 레슬링을 가지고 생활체육이나 국민 건강을 위해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마침 성일형이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해서 대학원을 진학해서 체육학을 공부하며 교사자격증을 취득했고, 마산시청 레슬링부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국제 대회에 출전도 하고 했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는 코치생활을 했다.


라디오에서 사망오보가 났을 정도의 교통사고가 있었다던데 얼마나 심했었나.

그때 내가 조그만 스쿠터를 타고 다녔는데, 부둣길을 타고 가다가 컨테이너트럭에 충돌 사고가 났다. 죽을 수도 있었다. 진단서상 최고의 기간인 전치 6개월을 받았다. 더이상은 끊을 수가 없단다. 실제로는 더 심한 중상이었다. 대퇴부 골절이 심해 핀을 많이 박았다. 지금도 엑스레이를 찍으면 많이 보일 것이다. 다리가 아직도 불편하다.

하지만 이런 고통과 아픔을 딛고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체육관을 운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노력해서 무언가를 해내는데 멀쩡한 사람이라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70년생 개띠로 모 포탈 70개띠들의 모임까페 회장을 역임했다고 했다. 어떤 까페인가?

사고 이후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간은 많고 새로운 삶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던 차에 시작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을 알고 소통을 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그 때 까페에 가입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내 자신을 스스로 위로도 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았다.

까페 회장을 하게 된 것은 잠깐 내부에서 문제가 있어 너도나도 꺼려할 때가 있었는데, 그럼 내가 하마 하고 맡았던 것이다. 그냥 친목 까페였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설렁탕집을 했다는 것과, 남대문 아동복상가에서 일한 것은 무슨 얘기인가?

레슬링을 버리기 싫어 공부도 하고 코치일도 하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앞이 막막했다. 사고당한 몸을 가지고 당장 운동을 하기는 어려웠기에 그리고 생활을 해야 했기에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설렁탕집을 하면 생계도 해결되고 돈도 좀 벌겠지 하고 시작했던 것인데, 식당일이 그 일 하나로도 매인 일이라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낮시간이라도 활용해서 하고 싶은 운동을 해보려고 남대문상가에서 화물일을 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다시 운동을 하게 되었는가?

남대문상가에서 일을 하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돈도 없어서 체육관을 열거나 빌리기 힘들어 서울대 레슬링부에 얹혀서 레슬링교실을 열었다. 그리고는 사이트 프로필에 적어 놓았듯이 협회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레슬링 도장을 정식으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레슬링 체육관을 운영해가지고 생활이 되는가?

체육관을 집중해서 운영을 하면 충분히 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 생활을 병행하고 있어서 좀 집중이 어렵고, 사람들 구미에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사람도 많이 들고 할텐데, 우선은 장사가 안되더라도 레슬링을 통한 생활체육을 하는 체육관을 만들고 싶은 이유가 있어 조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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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체육관을 열고 밖에 알릴 만한 전기가 필요했던 차였다. 국내 격투경기인 스피릿MC에서 심판을 보고 있었고, 국내 모격투싸이트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국내 격투기 관련자들끼리 단체로 일본 프라이드를 관람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대회 이벤트로 효도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를 상대로 그가 시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의 공격을 다 막아내고 어떻게 넘어뜨리고 하니깐 약이 올랐었나보다 거의 실전처럼 공격을 해오고 그랬다. 일본 프라이드 관계자가 그것을 보고 내게 출전을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내가 프라이드를 뛰게 되면 주목을 받아서 하고 있는 레슬링체육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뛰게 되었다.

   
   
프라이드 첫시합 이미무라 유스케였는데 그 역시 레슬링선수 출신이다. 그전에 같이 시합을 한 적은 없었는가? 어떤 선수인가?

같은 레슬링 선수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가 나서 레슬링 경기에서 만난 적은 없었다. 이마무라 선수는 그전에 한국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는 선수다. 어떤 대회에선가 1등을 했었다.


격투기 첫시합이었던 프라이드에 출전하는 느낌이나 감정은 어떠했는가. 젊은 선수와의 대결에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나?

격투기는 싸움이긴 하지만 스포츠다. 스포츠는 경쟁에서 이겨아 하는 것이다. 그전에도 레슬링으로 출전 경험은 많았기에 상대 선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승패가 명확히 이루어지는 싸움, 격투의 장이기에 내가 여기서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한국인 최초의 프라이드 진출자로서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 정신적인 부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선수로서 격투기 경험은 없던 터였고, 당시에 격투기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었던 때라 후배 선수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가지고 임했다. 그러한 부분이 부담으로 많이 작용했고 힘들었던 점이었다.


프라이드에 승리를 따냈던 4경기 중 3경기가 조르기 기술이 들어간 모두 초크승이었다. 초크 기술은 최무배 선수의 주기술인가?

주기술이라기 보다는 제일 인간적인 기술이 초크다. 팔이든 다리든 비틀면 고통과 상해가 오래 간다. 그러면서도 항복을 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크는 버티다가는 기절해버리니깐 상대에게 크게 손상을 주지않는다. 목조르는 것 이 인간적이라는 게 우스운 말이긴 한데 아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통한다. 암바 같은 거 제대로 걸리면 3개월은 경기를 쉬어야 한다. 무릅 같은 곳은 선수 생활에도 치명적이다. 켄샘락의 경우가 그랬다.


패한 경기를 제외하고 프라이드 4승 경기 중 가장 힘들었던 경기라면?

프라이드 28 소아파랄레이와의 경기였다. 야마모토의 경우는 계속 내가 우세하게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아파랄레이와는 계속 힘들게 밀리고 있던 경기였다. 하지만  져서는 안된다는 절대절명의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결국 조르기로 역전승을 얻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프라이드 5번째 경기였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의 경기나 K-1에서의 프레데터 경기에선 맥없이 패배해 많은 팬들이 실망을 했었는데, 이 경기에서 패한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프라이드 초기에는 앞서 말했듯이 뭔가 절대적인 의지가 강했다. 물러설 수 없다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많이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세르게이 전이나, K-1 경기 같은 경우는 시합 외적인 면에서 시합에 집중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그런 쪽에 마음을 많이 뺏기는 요인이 많았고, 준비 기간도 넉넉하지 못했다.

결국 패자의 핑계겠지만, 준비도 부족했고, 내 스스로 시합에 집중할 수 없었다. 승패를 떠나서 더 좋은 경기를 치룰 수 없었던 점이 아쉽고 팬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부산중전차'라는 별명은 어제부터 쓰이게 되었는가.

레슬링을 했다니깐 프라이드 측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다싶다. 아무래도 쇼적인 면이 강한 대회라 그런 타이틀이 필요한 것같았다. '부산던지기'라는 기술(스플렉스)도 그냥 경기만 하면 보여주는 게 없고 아무래도 흥행적인 이벤트 경기니깐 무리해서라도 기회가 되면 그런 기술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춤은 잘 추는가? 자이언트 실바와의 경기 후 재미있는 세레모니를 연출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 음악과 함께 영화 장면의 하나(일명 피버포즈)를 연출했는데... 미리 준비를 했던 것인가?

이런 거 하면 어떻겠느냐 하니깐 같이 간 친구들이 하지말라드라. 이미지 망가진다고... 근데 시합에 이기고 보니 기분이 좋아 이런 기분이면 한 번 해도 좋지 않겠나 싶어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사실 춤은 잘 추지는 못한다. 옛날 춤이나 추면 좀 출까... ^^


상대를 고를 수 있다면 겨뤄보고 싶은 상대는?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알려진 사람으로는 마크헌트랑 붙어보고 싶다. 첨에 잡았던 목표는 히스히링정도는 준비해서 나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야기일것 같은데, 프라이드에서 K-1으로 간 이유는?

크로캅이 K-1에서 프라이드로 왔듯이 그런건 뭐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시 프라이드로 갈 수도 있고, K-1 히어로스 같은 경기에 또 나갈 수도 있고, 이후 경기는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무대는 가리지 않겠다. 하지만 이제는 준비없이는 경기에 임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만을 생각하고 승리를 준비하겠다.


아무래도 취약한 타격기술을 많이 연마해야 할 것 같은데...

복서 출신 선수인 백종권에게 트레이닝을 준비하고 있다. 전엔 짧게 배웠는데, 이제부터는 기본 복싱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프레데터와의 경기에서 준비만 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체육관으로 격투기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나?

있기는 있는데, 이것을 업으로써 삼는다면 가야할 길은 멀고 그에 대한 보상은 적고 하기에 우선은 취미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함으로써 건강해지고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도 쉽지는 않다.


스피릿MC 쪽으로는 안나가나?

스피릿MC로는 제자들만 보내고 있다.


올해가 개띠해이고 그러고 보니 최무배 선수가 개띠로 이제 30대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하고자 하는지.

언제 그만 두겠다는 생각은 없다. 일단 내게 필요한 것은 두세 번의 승리가 필요하다. 올해 목표는 그 승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인터넷은 자주 들어오나? 사용 정도는.

인터넷이 없으면 체육관 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도움도 얻고 용기도 얻고 했으니까. 자체 홈페이지 말고는 싸이에 미니홈피가 있다. 경기가 끝나면 팬들이 격려의 메세지도 남겨주고 한다. 블로그는 없다. 요즘은 맘에 여유가 없어서 미니홈피도 자주는 못들어간다. 


후배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수들에겐 일단 훈련 열심히 하라는 것과 균형 잡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부하고 싶다.

관람하시는 분들은 저같은 사람이 나와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하면 그것에 용기를 얻고 생활의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월드컵 축구같은 대중경기에서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비록 피가 터지는 무대에서지만 우리 선수가 나가서 세계 무대에서 힘들게 싸워 승리를 얻어내는 모습에서도 스스로의 삶의 드라마에서 용기와 힘을 얻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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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배 팀태클 레슬링 체육관 http://www.letswrestling.net/

최무배 선수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runwolf

Posted by 미동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06.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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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를 위해..피를 다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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