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TV와 영화를 누비며 쉽게 볼 수 있는 배우가 된 오광록씨다. 그를 만난 건 2006년의 1월이었는데, 얼마전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한 상태여서 섭외하기가 어려웠다. 성북동이었나... 그가 자주 간다는 찻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 세상을 시원하게 살라고 '시원'이라 이름을 지었다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을 지닌 배우였다.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내게 행운이었다. 물론 그전에 만난 사람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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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운율이 있다면 배우 오광록에게는 여백이 있다. 그는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와라 쪽팔리잖아. 너, 사람 됐다-미스터 소크라테스”고 감옥에서 아들에게 말할 때도, “나 멋지지 않니, (일당들의 찬성) 아니라고도 좀 해봐라-잠복근무”며 뒷골목 패거리들에게 말할 때도 그는 강한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사 사이사이를 매듭짓지 않으며 잠시 동안 쉬어가는 그만의 여백은 뒷이야기를 각인되게 만들기도, 더 맛깔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의 웃음에 함께 웃게 될 수밖에 없는 연유이면서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것은 진지함과 웃음을 함께 버무려 버무림에도 그것이 그대로 의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어긋남의 조화는 분명 그만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이리라. 배우 송강호가 “대학로에서 고개를 옆으로만 돌려도 그대로 의미가 되는 배우”라고 칭한 데에는 그만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긴 코트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사내가 성북동 한 찻집로 들어섰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찻집이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영화처럼 그의 말은 느렸고, 말 사이에 깃든 여백은 더 넉넉했다. 그 말투에 익숙해질 무렵, 어느 새 기자도 느린 어투로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인생의 선배가 후배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관념과 실제가 함께 있는 이야기는 그대로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 진실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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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실 것 같습니다. 변성기가 지나서 목소리가 굵어지신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20대 중반에는 지금보다 목소리 톤이 좀 높았던 거 같아요. 30대 초반에 말을 잃어버린 시간들, 말을 너무 안 하게 되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목소리가 굵어졌죠.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누구에게나 있을 인생의 딜레마 같은 시간들이었죠. 점점 더 말을 잃고 어쩌다가 말하고. 연극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목소리가 더 굵어진 거 같아요. 말은 예전보다 지금이 많이 빨라진 겁니다.



힘들면 혼자 지내면서 똥밥잠이나 하면 돼요

20대에 배우예술원에 들어가셨는데 원래 꿈이 배우셨나요.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때는 시를 쓰거나 저널(journal)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시로서 저널을 대하고 싶었죠. 연극에 관심은 있었는데 내가 연극을 직업으로 가지게 될 거란 생각은 안했어요. 클럽활동으로만 생각했죠. 그러다 재수시절에 나랑 같이 고등학교 때 시 쓰던 친구 안내로 배우 예술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연극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어떤 것이었나요.

두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하나는 가난이고, 하나는 사람에게 지치는 것이었죠. 20대에는 사람에게 지쳐서 초반에 잠깐 연습했다가 깨뜨린 공연도 종종 있었어요. 작업을 끌고 가야 할 리더가 뭔가 생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난 거기에서 그만두었으니까. 물론 공연을 바로 앞에 두고 그런 건 아니에요. 참여했다가 며칠 만에 그만 둔거죠. 20대 때에는 1년에 한 편, 많으면 두 편 정도 했었던 거 같아요.

연극하시면서 시도 계속 쓰셨던 건가요.

시는 계속 써왔죠. 시를 쓰는 것도 가난한 건 연극과 다를 바 없죠. 어쨌든 시는 혼자 할 수 있잖아요. 힘들면 혼자 지내면서 똥밥잠이나 잘 하고 있으면 돼요. 밥먹고 자고 또 일어나고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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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정확한 시간이 있고 하나의 텍스트를 놓고 너무나 다른 개성들이 모인, 피가 튈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곳이죠. 그런데 패션이 다르듯이 하나의 작업을 공통된 추구를 위해서 사람들을 모은 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각자들 너무 다른 세계가 있기도 해요. 그렇게 만났을 때는 정말 힘들죠. 사람들이 다 점검되는 건 아니잖아요. 연극이 좋아서 왔다가 스스로 지쳐서 떠나는 경우도 많아요. 이제는 극단이 있어서 극단의 성격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모아져 가고 있죠.

출연하신 연극은 몇 편정도 되나요.

한 30여 편 돼요. 배우협회 원로 선생님들과 함께 했던 큰 공연 말고는 거의 주연을 했어요. 30여 편 중에서 거의 20편은 주연을 했죠. 올해에는 한 5월 즈음에 한 편 할 수 있게 될 거 같아요. 2002년도에 한 뒤로 아직 못했으니까, 올해 하게 된다면 오랜만에 하는 거죠.

연극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영화로도 만들어진 <거짓말>도 하셨습니다.

99년도 10월 중순에서 두 달 반 정도 했었죠. 정극스타일로 했었어요. 그 후에는 ‘테크노굿 거짓말’이라고 테크노와 굿을 결합한 실험적인 형식으로 다시 한 번 했었죠. 영화 <거짓말>은 보셨나요. 영화에서도 정치, 사회적인 압제에 대한 묘사가 있었죠. 연극은 그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어요.

주인공 제이(J) 아버지가 군인이셨고 제이는 어렸을 때부터 억압을 당하죠. 삼십대들이나 그 이후 세대들은 군사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이 갖고 있던 내림들이 있어요. 압박하고 제도 안에 가둬두고, 누르고 이런 것에서 많이들 당하면서 살았어요. 그것을 이 작품에서는 새디즘과 매저키즘으로 다룬 거죠. 그것을 한 개인의 정신병으로 보지 않고 사회와 시대의 문화가 가지고 있던 정신적인 유산으로 포커스를 맞춘 거예요.



나는 순수 사회주의자

영화는 96년 <눈감으면 보이는 세상>으로 데뷔하셨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셨어요.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무정부주의 노동자로 출연하셨는데 박찬욱 감독의 말로는 출연하신 마지막 장면에서 동진(송강호)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최고의 순간”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박찬욱 감독과는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요.

알고 지냈던 건 아니에요. 송강호씨는 연극할 때 나를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선배로 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다가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씨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봤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나오는지도 모르고서. 송강호씨가 너무 반가워서 박감독에게 내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에요. 저 선배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옆으로 고개만 돌려도 거기에 의미가 있는 배우라고 이야기 했다고요. 나도 그 얘기는 박감독에게 들었어요. <복수는 나의 것>은 마침 그 역할이 펑크 나면서 출연하게 됐죠. 여행 중에 연락을 받았는데 무정부주의자라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내 정신하고도 닮았고. 내게도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이 있어요.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셨는데, 최근 시사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있으신가요. 사학법이나 황우석 사건은 어떻게 보시나요.

한마디로 X같아서 논단하고 싶지 않아요. 같이 머리를 담고 논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요. 당연히 사학법은 고쳐져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이 고리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학교의 재단부터가 비리인데, 가난한 초등학생 부모들이 선생님을 못 찾고, 그러한 것들이 평상이 되어있어 익숙해져 있는 것이죠. 그것은 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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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황우석 사건을 자세히 안 봤었어요. 사실 충격이었죠. 그렇게 흘러갔나 보다 하고 있어요. 나는 이념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순수 사회주의자라고 보는 게 맞아요. 작업을 하든 어떤 일이든지 인간이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인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겪게 되잖아요. 큰 강에 작은 돌을 던져도 파장이 일듯이 말이에요. 결국 나는 영혼의 문제로 봐요. 사학법 같은 경우에는 밖에서 시위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봐요. 극우들은 영혼들을 수없이 캐내서 닦아내고 자기 영혼들을 위해서 보석을 만들어야 하는데, 밖에 있는 남의 것을 자기 집안에 들이려 하는 말이 되질 않는 일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자꾸 군사문화청산, 인권문제, 식민지 시대, 친일파 이런 게 그 내림들이 안 깨뜨려지기 때문에 자꾸 건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영화 작업을 끝내시면 주로 어떻게 보내시는 편인가요.

작업하다보면 작업정신 때문에 많이 부딪치고 그러다 보면 많이 지치죠. 그렇게 돌아와서는 그냥 지내요. 동네 산보 살살 다니다가 똥밥잡도 열심히 하고요. 외출 나갔던 내 정령들이 돌아오고 내 영혼과 내 몸이 움직이는 생활들이 닮아지면 글도 써지기 시작하죠. 그렇게 몇 달을 혼자 보내기도 해요. 두어 달 만에 외출을 나가기고 한 적도 있어요.



박찬욱 감독은 짚어가게 되요

저예산 독립 장편영화를 거치시면서 최근에는 상업영화를 하셨잖아요. 상업영화를 하시면서 어떤 딜레마를 겪으시지는 않으시는지요.

박찬욱 감독이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만든 것은 상업영화다. 항상 상업을 염두 해 두고 한다. 박 감독의 표현은 통로라고 이해하는 게 좋겠어요. 이 자본 자체가 인디영화와 달리 거대 자본을 쓰고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채워줘야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죠. 누군가의 자본을 가지고 자기 작업만으로 다 깨뜨릴 수는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관객을 1/3과 2/3로 나눠 봅시다. 2/3는 상업적인 영화 코드에 익숙해져 있고, 편해져 있다면 즐기기가 좀 더 용이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것은 관객들과도 통로를 만들어 주는 코드가 있다는 거예요. 결국 박 감독이 추구하는 궁극은 상업의 끝을 잘 깨뜨려내면서 현실을 보게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통로를 만들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우리가 작업하는 추구하는 길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출연하신 작품들 중에서 <잠복근무>는 상당히 의외의 선택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폭력적인 두목을 맡으실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데요.

그건 극 중 역할이에요. <잠복근무>는 출연여부에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안하려고 헸죠. 대사가 많아서 감독에게 내가 수정하겠다고 말해서 그것이 안 통하면 그만 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이 흔쾌히 그걸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서 박광춘 감독에게는 고맙죠.
대사들도 수정하고 내 애드립도 많았어요. “아니라고도 해봐라”, “아프다” 부분 같은. 또 촬영 중에 컷이 안 들어와서 “놀랬잖아”라고 한 것도 있었죠. 대사들 많이 고쳤어요. 그래도 수정하고 쳐낼 수 있는 재료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죠. 동지들이랑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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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함께 하시는 분들을 동지라고 부르시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두들 독립군들이니까요. 다 야생이고. 이 사회에서 야생의 힘을 잃지 않는 게 내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하는 것이죠. 내 자신을 휩쓸리지 않게 해주는 거예요. 그것이 내가 지니고 있는 나의 좋은 저항들이죠.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거예요. 반감하고는 달라요. 나쁜 것에 반감을 가지고 어떻게 되받아치는 게 아니에요. 저항이라는 건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좋은 기운들이죠.

작업하는 사람들이 잃지 말아야 할 건 상업의 세계로 가도 좌지우지 되는 게 아니라 중심에 서서 그것들과도 견주고 살 수 있어야 하는 저항의 정신이죠. 그것이 쓰러지면 나는 죽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영혼들, 내 어느 부분들이 파괴되고 시들어 버리고 아사되어 가는 것이라고 봐요. 떠들다 보니 쑥쑥 나오네 어거(웃음).



인물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영화작업 하시면서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가 있었나요.

있었어요. 처음에 당혹스러웠죠. 독립영화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었죠. 연극할 때는 동지개념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메이저로 갈수록 예전에 느꼈던 동질감을 느끼기가 힘들어요. 그런 것들이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내가 섬세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근데 지금은 그런 걸 넘어 버렸어요.

매체의 다름 때문에 어려운 것도 있죠. 연극은 호흡을 던져놓고 가잖아요. 어떤 사운드나 음악에 몸이 툭 건드려지면 그 호흡에 움직이고. 마치 춤을 추듯이 말이에요. 영화 같은 경우에는 프레임에 개념으로 계속 썰어야 하죠. 매체의 다름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어요.

현장에서는 나도 다시 반성하고 보지만 서로 소통들이 잘 못할 때가 있어요. 충분히 서로 소통하고 맡겨놓게 되면 내가 내 투로 할 수 있게 되요.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내가 썰어야 할 자리들을 보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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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늘 대사를 하실 때에 앞을 이야기하시고 조금 공백을 가진 뒤에 다음 대사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한마디 대사를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잠깐의 공백이 어떤 강조의 영역처럼 보이거든요.

그 띄어 읽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전달해 줘야할 효과, 다른 하나는 그것을 보는 즐거움에 관한 일루전(환상)에 관한 것이죠. 영화를 보는 환상은 실제 리얼로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인데 그것을 보는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것이죠.

박찬욱 감독의 3부작을 지나 최근작들을 보면 주인공들에게 구심점이 되는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시는 듯 합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나 <소년 천국을 가다>의 아버지가 그래요. 이번에 출연하실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주인공을 돕는 역할인데요.

그렇죠. 성당 신부 뱀파이어 헌터 역할이죠. 주인공이 죽음에 처하는 상황이 왔을 때 오히려 내가 그를 살려내고 그를 지켜주는 입장이 되는, 약간 비밀에 감춰진 인물이에요.

이제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오실 텐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어떤가요.

후지지 않은 걸 고르게 되요. 작품적인 성향이 사회적인 관점이 어딘가 있기를 바래요. 단지 기획영화, 상업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이 있잖아요. 그저 코미디를 지향하는 것은 얼른 덮어버리고 싶어요. 그런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와요.

<잠복근무>는 김갑수 선배와 어렸을 때부터 버려진 고아원 아이였다는 배고픈 시절은 겪은 그런 그의 정체성이 있잖아요. 처형지에 버려진 인물 같은 것이죠. 그런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배우들은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나쁘다는 인물을 맡았을 때 그 나쁜 것만을 지독하게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에요. 전형적인 악역을 위해서 지겹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고개를 젓게 되요.

그 캐릭터만이 가지고 있는 히스토리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삶은 자기들의 해석이 있어야 해요. 같은 말이라도 어떤 투로 이야기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삶의 느낌이 달라지듯이 말이죠. 전형화 시켜서 인물을 이거다 저거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작업을 통해서 그 인간의 다른 외로움을 보던지, 그 인간이 그렇게까지 밖에 올 수 없었던 사회적 병폐를 볼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해요. 이분법으로 나눠진 작품들은 너무 싫어요. 그런 건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일상에서야 너무 버겁고 피하고 싶지만 작업을 통해서라도 그의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분명 그도 버려진 인생일 거라고.

그래서 그의 관해 조금이라도 실낱같은 인간적인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그런 게 작업이죠. 일상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나는 이렇게 되었다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사이, 관계나 통로가 없는 작업들, 나는 엑스라고 봐요. 새는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거잖아요. 참 나도 이렇게 인터뷰 하는 거 처음이에요(웃음). 아까 괜히 사학법이야기도 나오고 뭐 별별 이야기를 다 했네요.



1962년생. 배우예술원 1기.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춘향 1991>, <노동의 새벽>, <관객모독>,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외 다수.

영화 <사월의 끝>,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 <와이키키 브라더스>,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마지막 늑대>, <소년, 천국에 가다>, <미스터소크라테스>, <흡혈형사 나도열>(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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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양푸름 / 사진. 원미동







Posted by 미동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06.17 21: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분의 인터뷰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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