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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이 만난 사람들

노래꾼 손병휘, 2005년의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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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와 노매드를 그만 두고 찾아간 일터는 미디어몹이라는 블로그미디어 사이트였다. 블로그야 이미 하고 있던 차였고, 주로 하던 일은 사이트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일은 단순하고 실은 재미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죽어있던 편집국을 부활시킬 겸 자체 기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뭐 그다지 자주 양질의 글을 만든 것은 어니었지만 나름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런데 늘 문제는 혼자 해야했고, 지원은 별로 없었다. 그 시절 만났던 가수 양반이다. 그는 나보다 한두 학번 위였는데 생각보다 작은 체구의 순박한 사람이었다. 막 [촛불의 바다]란 앨범을 발표했을 무렵, 그와 만난 시기는 2005년의 여름날이다.  



지난주 초였습니다. 앨범 [촛불의 바다]의 가수 손병휘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진이나 다른 기사에서 보기완 달리 생각보다 왜소해 보였고, 그저 이웃집의 친구나 고향의 사촌형 같은 수수한 모습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라면 일단 많은 대중들에게서 알려지지 않은 점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가까운 현실을 노래하는 가수인 손병휘씨 같은 가수에 대한 정보는 일부러 찾기 전에는 찾아보기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약 한 시간 정도 그와 나눈 몇 마디를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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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중들이 손병휘라는 가수를 잘 모를 듯 하다. 스스로 대중가수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프로필을 말한다면?

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노래꾼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 대중가수라고 생각한다. 단지 의식이 있는 내용을 부르고 활동방식이 언더그라운드이고 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포크가수나, 민중가수라고 느껴지고 그렇게 불리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에 대하여 대략 설명한다면.

2000년에 1집 <속눈썹>이 나왔다. '조국과 청춘'과 '노래마을' 등을 거쳐 솔로 준비를 하면서 만들었던 노래를 엮었다.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있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때는 지금은 없어진 '문화강국'이라는 곳에서 발매를 했었다.

2집 <나란히 가지 않아도>부터 직접 제작을 했는데, 2002년부터 준비를 해서 2003년에 만들었다.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이라크 침략 전쟁을 거치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2집에서 어떤 의식의 성장이란 부분이 드러나 있는데 스토리가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부분을 일정정도 시도했다.

그래서 3집 <촛불과 바다>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테마를 가지고 음반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음악을 한 것은 얼마나 되었는가?

학생시절 조국과 청춘시절부터 따지면 93년부터 한 셈이다. 13년 정도... 솔로는 99년부터 했다.


그럼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

중학교 때 어느 날인가 잠결에 참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것이 아바의 노래들이었는데 그것을 시작을 팝을 듣게 되었고, 비틀즈도 듣고 그러다 영화음악, 심야 아트락 프로그램 등을 듣다가는 노래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타도 시작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영어토론 동아리를 다녔는데 매주 모임이 있었다. 신입생 노래자랑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1등을 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게 되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세상의 다리가 되어였다. 그때부터 모임에서 기타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하다보니 욕심도 생기고 해서 열심히 노력을 했다.

대학때는 학교 노래패에 가입을 했는데, 첨엔 민중가요가 낯설어서 나가질 않았다. 그러다 학생회 활동을 하고는 의식회 되어 1년후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고 정치적으로 깊은 활동에 자신이 안섰다. 92년 대선때 문선으로 나가고 조국과 청춘을 만나고 부터 노래운동을 방향을 잡았다.


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는가?

아버지는 군인출신이시다. 그리고 경상도 사람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주 건강한 보수 시민 집안이었다. 근데 데모 안하고 노래한다니깐 좋아하시드라. 붙들려갈 염려는 덜었다고...



붙들려 간 적은 없었는가?

학창시절 통일선봉대 활동으로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다. 구류 먹었다.


재학시 사상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고민이 많았다. 깊게 들어갈수록 나와는 거리감이 생겼다. 그래서 89년 군대갔고 제대 후 노래운동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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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좋아하는 뮤지션은?

비틀즈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이고, 레드제플린, 초기의 딥퍼플 등을 좋아한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 김민기... 뮤지션으로 보았을 때는 조용필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나라 대중음악 문화의 측면에서 김민기라는 존재는 거대한 산이다.



앨범에서 보컬이 약하다고 느껴지는데 그 비중이 적은 이유는?

반주와 세션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보컬도 중요하지만 앨범이나 곡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수고를 좀더 느껴보시라는 의도이다.


현실 참여적인 노래와는 다른 개인적인 감성을 노래하고픈 생각은 없는가? 혹은 과거의 좋은 가요들을 다시 부르기 할 생각은?

아마도 다음 앨범에서는 그렇게 할 듯 싶다. 이미 만든 노래도 여럿 있다. 앨범에 발표하지 않는 노래중엔 그런 노래가 많다. 다시부르기는 이미 다른 분들이 잘 하고 계시니까 굳이 내가 할 생각은 안 든다.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하셨는지...

물론이다. 29살에 했으니 비교적 일찍 한 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전업가수로 생활은 어떠한가? 어렵지는 않은가?

지금은 괜찮다. 98년까지는 적자였다. 솔로 생활을 한 뒤로는 나아졌다.



음반제작비는 스스로 대는 것인가?

적자를 감수하고 제작을 한다. 다른 활동으로 그것을 메꾼다.


강의나 방송도 나간다는데...

실용음악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다. 강의는 실기보다는 가수로서의 자세를 많이 강조한다. 기술적인 것은 오히려 그들이 앞설 수도 있기에 난 자세를 갖추기를 강조한다. 현재 강의나 방송은 안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닐 테고...

아침에 일어나, 이메일 체크하고, 운동을 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볼 일 본다. 뭐 사람만나거나 요즘같으면 앨범 홍보활동인데, 그것도 한달쯤 하니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드라. 볼 일 없으면 작업실 가서 연습하고, 음반 작업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먹고... 최근엔 815 광복절 행사 전야제로 8월 14일 공연이 있어 그것을 준비한다. 술을 자주 하는 편인데... 금년엔 주 4일정도만 먹었으면 한다. 작년엔 거의 매일 마셨다. 주량은 소주 한 병 먹으면 알딸딸. 두 병이면 좀 취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있는 사회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정세분석이나 정치 쪽에는 좀 약한 편인데.. 노대통령이 그렇게 얄팍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고뇌를 하고 말한 것이라 생각되고 내가 거기에 대하여 논평을 할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다.


안기부 X화일에 대하여는...

불법이니 뭐니를 떠나 진실이 중요한 것이다. 진실은 진실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인데, 어떨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하면 안된다. 이런 일이 드러난 것이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확실히 청산을 해야 한다. 밝힐 것은 다 밝혀내고...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파업에 대하여는...

음악하는 사람한테 너무 많은 걸 물어보는데... 일단 원론적으로 모든 노동자의 파업을 정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세세한 내용을 떠나 같은 노동자(지상근무자나 승무원)들과 연대를 하지 못했는가... 라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다.



얼마전 카우치의 생방송 노출사건으로 비주류 음악계와 인터넷이 한 바탕 들끓었는데...

사후 떳떳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이지 않았나... 했으면 했다고 밝히고 죄가 있으면 죄값을 받겠다고 자신있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편집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공중파 안나오겠다는 발언같은 것은 안나왔어야 했다. 다른 인디밴드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던 방송이었는데 경솔하지 않았나.. 음악적 방향은 다르지만 음악인으로서 이일로 다른 비주류 밴드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나 공감대의 기회가 사라지거나 더 입지가 좁아질 것에 대하여 안타깝다. 당사자들에겐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다.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안됐다.


마지막으로 앨범을 들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손병휘 노래의 감상포인트...

아까도 말했듯이 반주 하나하나를 살릴려고 했다. 욕심이지만 그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음악은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 하나하나에도 가치가 있는 것이고 앨범 하나에도 가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인들의 숨결이 다 녹아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다 살릴려고 노력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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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전화가 자주 왔습니다. 혼자서 음반을 제작하고 홍보하고, 공연준비하고.. 스스로 매니저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여태 전화로 독촉한 후배가 있는 곳으로 그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미 노래를 인생으로 선택한 그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을 듯 싶습니다. 그것도 마냥 남들 부르는 사랑 타령이나 흥에 겨워 춤이라도 추는 노래도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늘상 유행에 쓸려 편향적으로만 흘러가는 우리 나라 대중음악계에서 촛불처럼 서있는 그의 존재감을 믿습니다.


http://www.folk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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