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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기억을 먹는다

내 인생의 감자탕, 혹은 감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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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자탕엔 감자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아마도 처음 감자탕을 먹는 사람이라면, 이름은 감자탕인데 왜 감자 대신 뼈가 이리 많을까? 하고 궁금해하기가 십상이다. 뭐 감자가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감자탕이라 하는 것에 무리는 없을 것이고, 또 거기 들어간 뼈가 '감자뼈'라고 불리는 것이라는 소리도 있다. 여튼 돼지뼈가 잔뜩 들어간 그래서 그 뼈사이에 끼인 살이나 건더기를 쪽쪽 빨아먹는 재미와 맛이 있는 그 감자탕, 혹은 감자국에 대한 얘기를 해보련다. (그 조리 방법에 따라 보자면 감자'국'보다는 감자'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바 이후 감자탕으로 통일한다.)

나는 감자탕을 언제 처음 먹어보았을까... 생각을 해보건데, 대학교 이전엔 그런 음식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듯하다. 어쩌면 '감자탕'이란 글자를 어느 시장골목이나 음식점 문에서 보았을 것 같은데도 딱히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내 시절의 어린 학생들이 먹기에 좋은 또는 접근성이 있던 음식은 아니었나싶다. 또 부모님이 감자탕을 잘 드셔서 어린 나를 데리고 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감자탕은 성인이 된 이후에나 내 입맛에 찾아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처음 내가 감자탕을 접한 것은 청량리 먹자골목에서였다. 청량리는 내가 야학을 하던 시절 면목동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로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일종의 환승장소였다. 거기서 나는 야학 선배들과 혹은 과친구들과 술을 여러 번 마셨는데, 그럴 때면 가는 곳이 먹자골목의 감자탕집이었다. 나 역시 처음엔 왜 이 음식이 감자탕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근데 감자가 들어가긴 하니깐... 그냥 인정했다. 그리고 건더기가 다 졸은 국물에 김치를 넣어 육수를 시켜 팔팔 끓여 남은 소주의 안주를 삼았다.

그곳에선 고민이 많았다. 물론 즐거움도 없지는 않았지만, 스무살의 고민과 학생운동, 야학 그리고 친구들의 고뇌와 한숨이 쏟아져 나오고, 선배들의 격려와 친구들의 위로로 마음을 달래던 그런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언제부터 발길을 끊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권이 집과 종로구 외곽의 회사가 된 이후로는 거의 가지를 않았다.

두번째 추억의 감자탕 명소는 성신여재 근처의 돈암시장 태조감자국집이다. 이 역시도 대학시절 알게 된 곳인데, 하루는 두 학번 아래 후배가 성신여대 근처에 괜찮은 감자탕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중간에 끼인 학번 녀석과 셋이서 막내의 안내로 태조감자국집을 찾았다.

이곳은 '00년 전통의 감자국집'이라는 머리글이 늘 붙어있는 것이 특징에 주인장의 갖가지 재치있는 주당에 대한 명글귀가 벽에 온통 적혀있는 것이 재미있는 집이다. 내가 갔을 때가 '33년 전통의' 였다. 메뉴는 감자탕 뿐, 그리고 그 크기도 1인분, 2인분이 아니라, 좋타, 최고다, 무진장... 그런 식이다. 써있는 글귀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도 재밌거니와, 음식 맛도 아주 좋아서 제일 맛있는 감자탕 집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뼈에 붙어있는 살도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뒤로 가끔 난 여길 모르는 사람들은 데려가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고기가 진정 돼지고기인가를 의심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발을 끊은 지가 오래다. 요즘 다시 이곳의 감자탕의 맛을 보고 싶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다시 오면 주변의 누군가를 꼬셔서 한번 가볼 참이다.

그 다음의 감자탕 집은 은평구청 부근의 감자탕 집으로 사실 이 집은 정확히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이 집은 내가 첫 직장을 다닐 때 3차로 자주 가던 곳이다. 1차 회식은 사장님과, 2차 회식은 상무님과 그리고 3차는 부장님 혹은 차장님 이하 나머지 남자 직원들이 좀 더 편안 자리에서 술을 먹자는 생각으로 찾아 가던 곳이었다. 사실 이곳은 감자탕보다 반찬으로 나오는 겉저리 김치가 더 맛있었던  집이었다. 당시 그집 아주머니랑 친한 척 하는(실제로 친했던지) 직원이 하나 있어 김치만 자꾸 시켜 먹는 바람에 아주머니한테 타박을 듣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감자탕집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 자리를 이전했고, 그 이전한 곳도 사실 그집인지 어쩐지는 내가 확실하지 않다. 늘 내 주도로 오는 곳이 아니었기에 또 이미 술에 취한 채로 오던 3차 장소였기에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위에 적어 놓은 일뿐이다.

응암시장인가... 유명한 또 맛있는 감자탕 집이 있다고는 하는데, 난 이곳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이유는 딱히 없이 누가 가자는 혹은 나도 가자는 말이 없었다. 또 집 주변인 이곳에서 술을 먹는 일은 거의 없기에... 또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기에... 집 부근의 이곳은 갈 일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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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서 감자탕을 해먹어 보았다. 밖에서 파는 감자탕과는 재료나 맛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아내가 의외로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아마도 무척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이거니와, 돼지 등뼈 대신에 돼지 갈비를 고기로 써서, 푸욱 익혀 술술 떨어지는 그 부들부들한 살코기 맛에 부담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집에 감자가 풍성하다. 2주전 시골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께서 감자를 캐셨다고 한봉다리를 주셨는데, 다음 날인가... 사장님이 강원도 시골집엘 다녀왔다고, 또 감자를 한보따리 주셨다. 그 이후로 매일 감자를 먹고 있다. 주로 삶아서만 먹다가 겨우 이번 주에야 갈아서 전을 부쳐먹고,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한다고 감자탕을 해본 것이었다. 뭐 계절이 더워서 해먹기 썩 좋은 메뉴는 아니었지만, 한 차례 끓여 먹고나니 땀도 쫘악 빠지고 배부르다. 그렇게 감자탕을 먹고나니 그저 지난 시절 가보았던 감자탕집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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