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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포항을 다녀왔다. 혼자 간 길이라 물회 한 대접밖엔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 과메기라도 한 두릅 살까 했으나 작년엔가 한 두릅 사서는 혼자 먹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어 섣불리 지갑을 열지 못했다. 모름지기 음식도 같이 적당히 덤벼 먹어주는 이가 있어야 먹을 맛이 난다.
고래고기도 팔길래 한참을 구경하다 먹어 보지 않은 고기를 사서는 또 어떻게 해치울까 고민이 되어 그만두고 말았다. 결국 고래고기는 다음 기회에나 기대해봐야겠다.
올라오는 길에 시골집에 들러 하루를 잤다. 다음 날 장에 가신다는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요즘은 마트가 대세라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라도 차로 마트를 모시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단둘이 장을 가기는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아 나름 기분이 묘했다.
이것저것 어머니 염두에 두신 물건들을 사셨고, 난 오랜만에 어머니와 무슨 별미를 맛볼 것인가를 고민하다 양미리를 선택했다. 사실 옛날엔 주변에 먹는 사람도 없어 상상도 못했던 음식인데, 술을 배우고나니 웬만한 안주거리는 모두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천안장에서 산 양미리 한 두릅(수무마리)은 5천원. 소주 안주로 이 얼마나 좋은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소주가 빠질 수 없다. 그냥 양미리만 먹기엔 맨숭맨숭하지 않은가. 뭐 신김치와 함꼐 조린다면 밥이라도 먹겠지만...
드럼통에 나무를 넣고 불을 지폈다. 갑자기 나무에 불길이 오르는 바람에 세 마리 정도는 홀라당 태워버렸다.
불길이 죽고 뜨거운 숯불 열길에 노릇하게 익어가는 양미리. 쌀쌀한 날이라도 나뭇불 천천히 때면서 손도 녹이고 소주도 한 잔 하고... 아들의 성화에 어머니도 결국 한 잔 하신다.
먹기는 먹지만 속도가 영 나질 않는다. 어머니도 드신다고는 하지만 어디 남자만 같겠는가. 이렇게 거의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으니 친구가 생각난다.
하얀 속살과 노란 알집이 보인다. 암놈인 게다. 암놈은 암놈대로 숫놈은 숫놈대로 그맛이 다르다.
잘 구워진 양미리를 가시째로 쩝쩝 씹어먹으면 고소한 뒷맛이 느껴진다. 살만 먹으면 좀 심심하다.
초고추장 푹 찍어 한입에 쩝쩝... 소주 한잔 넙죽 들어간다.
결국은 소주 한 병은 다 마셨지만 양미리는 몇 마리 남았다. 두 사람이서 스무 마리를 못먹었으니 그다지 잘 먹는 것은 아닐 게다. 그것도 뭐 어머닌 맛만 보시고 거의 내가 먹은 꼴이다. 가만 따져보니 한 두릅이면 셋이 소주 안주로 적당할 듯 하다. 뭐 물론 잘만 먹는다면 둘리라도 충분히 소화할 테고...
그래도 오랜만에 어머니와 단둘이지만 계절 별미로 저녁 한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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