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를 처음 안 건 딴지일보에 있을 적이다. 2000년후반이었나 그 다음 해던가, 환타는 당시 인도여행사에 있었고, 얼마 안있다가 인도로 넘어가서 인도특파원을 했드랬다. 있으면서 프리로 여기저기 기사를 제공했고, KBS에 동영상도 제공하면서 리포팅을 했었다. 언제부턴가 가이드북을 만들었는데, 지금 보면 제일 잘 나가는 가이드북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작년에 웹진 트래브를 시작하면서 여행에 관련된 인사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따기로 마음먹고 제일 처음 섭외를 해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작년 5월 어느 따듯한 날의 고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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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웹진 트래브는 독자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트래브가 만난 사람’이라는 인터뷰 꼭지를 마련합니다. 트래브는 이 꼭지를 통하여 여행에 관련된 사람 혹은 여행을 삶으로 살고 있거나 여행을 꿈꾸는 이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손님으로 인도여행 전문가이자 인도와 중국의 가이드북 작가인 전명윤씨(환타)를 만나보았습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여행인으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가 다녀온 인도와 중국에 대한 이야기, 그 감상 혹은 에피소드를 들으며, 단편적이나마 가이드북 작가로서의 삶을 살짝 엿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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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라고 불리는데... 이건 무슨 말인가?

호라면 호고 ^^;;; 인터넷에서 쓰는 아이디이자 내 별칭이다.


왜 별명을 ‘환타’라고 지었나?
설마 마시는 음료 이름인가?
그렇다면 대략 실망감이 서서히 내게로 달려오는데...

1999년에 인도를 갔을 때다. 인도에서 노란색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는데, 거기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환타색 눈깔을 가진 놈’이라고 했다. 거기서 환타라는 이름이 생겼다. 실망시켜 미안하다만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새끼를 깐 이야기가 더 있으니 그것은 조금 멋드러진다.

1999년 당시 한창 류시화 씨가 주가를 올리던 시기다. 그의 책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1997, 열림원)은 참 좋은 기행문이지만, 독자들이 저자의 몽환적 시각과 문학적 표현마저 사실로 받아들여 인도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품고 있던 때였다. 자기가 책으로 보고 생각했던 인도와 가서 직접 보고 느낀 인도가 너무 다른 것이다. 이맘 때 딴지일보에 인도통신원으로 글을 쓰던 때라 ‘인도에 대한 환상을 깬다’라는 생각으로 환상할 때의 ‘환(幻)’ 깬다는 의미의 ‘타(打)’를 붙여서 ‘환타’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어떤가. 이 사연이 좀 낫지 않은가?


그래도 실망은 실망이다.
하구많은 나라 중에 왜 ‘인도’였는가?
어떻게 인도를 처음 가게 되었는가?

고3때부터 연애를 했는데 방위 복무 기간 중 헤어졌다. 7년의 연애 끝에 헤어진 충격 때문에 당시에는 거식증까지 걸려 석달 동안 몸무게가 무려 13kg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천리안에서 만난 후배의 ‘인도나 가보라’는 말에 소집해제를 앞두고 인도여행을 준비했다. 그때가 1996년이다. 당시만 해도 인도 여행 가이드북도 없던 시절이다. 하이텔 여행 동아리 <세계로 가는 기차>에서 45일간 인도여행을 다녀온 이-당시는 전설같은 인물이었다-가 설명회를 한다기에 갔지만 사진 슬라이드쇼 보고 인도 여행 이야기 좀 들었던 것이 내가 접한 인도 정보 전부였다.

그렇게 떠나 3개월간 인도를 돌아다녔다. 3개월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여행을 정리할 겸 테레사 수녀님이 캘커타에서 운영하는 빈민구호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당시 내가 돌보던 장애인 소녀가 끝내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방콕에 머물던 동안에 그 소녀의 죽음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부모님께 부탁해 송금을 받아서 다시 인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7개월을 더 떠돌았다. 총 10개월 동안 인도를 돌아다닌 셈이다.


오오 대단하다. 테레사 수녀와 일을 함께하다니...
그를 직접 대면한 일이 있는가?

11년 동안 여행 다니면서 가장 뿌듯한 것은 <TIME>이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인물 중 두 명, 테레사 수녀님과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개인면담을 신청해 3~4차례 직접 대면하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님은 그저 보기만 했다. 하지만 미사를 드릴 때 수녀님이 어깨에 손을 얹어주시는데 에너지가 다른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두 분을 비교해 보면 어떤가라는 질문을 곧잘 듣는데, 그냥 봤을 때는 테레사 수녀의 에너지가 대단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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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인도여행 전문가다.
도대체 왜 인도에 그렇게 푹 빠졌나?
인도의 매력은 무엇인가?

인도는 빈부차이도 심하고 그 차이가 눈앞에 보이는 적나라한 가난으로 나타난다. 포장되지 않은 날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서서히 즐길 수 있다. 물론 그 가난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인도 환경 자체가 감출 필요도 없고, 그런 삶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무너지고 ‘나는 가식덩어리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한다. 이런 생각으로 아주 차근차근 무너져 내리며 ‘내가 그렇지’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기 한계를 체감하는 것이다. 시체 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납득하기가 조금은 어려울 듯한 이야기다.
인도가 여행지로서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관광지가 있다면 울타리를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 받으면서 관광 상품으로 만들지만 인도는 그렇지 않다. 곳곳에 유적지가 있고, 그곳에 여전히 인도인들의 삶과 생활이 담겨 있다. 생생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접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이살메르는 사막에 있는 성이다. 여기는 역사적 유적지로서 볼거리뿐만 아니라 아이와 개들이 뛰어노는 생활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 같으면 탑이 무너진다고 할 때 억지로 보수하면서 유지시키지만 이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둔다. 풀이 나고 바람에 깎이고 귀퉁이가 부서져도 그게 그냥 자연스럽게 보인다. 방치된 폐허의 아름다움이랄까. 그들의 유적지가 그렇듯 그들 삶도 그런 식이다.


환타가 보는 인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남자들이 눈물이 많다. 사람들이 여리다. 여리다보니 폭력범죄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행객 사망률을 보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대신 인도인은 거짓말을 잘한다. 신용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인도의 유명한 성서 카마수트라 첫장에 나오는 말이 ‘내일의 공작보다 오늘의 비둘기를 취하라’ 는 말이 있다. 인도인의 사고방식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인도인에게는 지금 현재가 최고다. 그러다 보니 인도는 단기거래에서는 절대 손해 안보지만 장기 거래는 취약하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유명한데... 비판도 많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도는 공화국이니 카스트 제도는 헌법상 불법이다.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도시 내에 카스트 제도가 흐릿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막상 내가 버스를 탔는데, 버스 기사가 브라만(제1계급, 성직자나 승려)인지 수드라(제4계급 천민)인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도시생활은 계급들을 자연스럽게 부대끼게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상대방의 성씨(First Name)를 물어보지 않는다. 성씨에 자신이 속한 카스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친해지고 정신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 풀네임(성과 이름)을 묻는데, 이 말은 ‘네 카스트 까봐라’ 가 되는 거다.

도시생활에서 카스트 제도가 옅어진다고 하지만 결혼은 반드시 카스트 제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인도에서 자유연애로 결혼할 확률은 5%가 넘지 않는 것도 카스트 제도 때문이다. 결혼을 하려는 남자나 그 집안에서는 주로 중매를 넣거나 신문에 광고를 한다. 주말 신문광고의 첫 번째는 ‘Wanted Bride(신부 구함)’ 가 장식한다. 그 내용을 보면 ‘나는 28살에 브라만 출신이며 얼굴 하얀 남자. 연봉은 얼마이고, 피부가 하얀 크샤트리아 여성을 구함’ 이라고 올린다. 그럼 전화가 오고 가장 먼저 갖는 절차가 족보교환식이다. 신랑신부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다. 그 다음은 지참금에 대한 흥정이다. 결혼할 때 여성이 지참금을 가지고 간다. 중산층의 경우 오토바이 하나, 현찰은 한화로 200만 원 정도. 남자의 지위가 높다면 지참금의 액수는 올라간다. 지참금이 결정되면 계약금, 중도금, 잔금 순서로 전달되고 잔금은 결혼하는 당일 날 전달된다. 지금도 시골에서 신랑신부는 결혼하는 날에나 얼굴을 보는 경우가 흔하다.

오래된 얘기이지만 1992년에 브라만 여자와 천민 남자가 사귀었다. 그 둘은 마을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마을에서 잡아내서 가족들이 그 둘을 처형시켰다. 남자는 때려죽이고 여자는 성기를 불로 지져서 살해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남인도의 아주 골수적인 동네에 가면 천민들은 방울을 들고 다닌다. 이는 천민이 지나가니 알아서 피하라는 뜻이다. 시골가면 천민들은 마을 바깥에 살고 우물도 같이 쓸 수 없다.

더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 1912년 캘커타에 처음으로 상수도가 놓였을 때다. 그때 브라만 3명이 분신했는데, 이유는 같은 호수에서 나온 물을 천민과 나누어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공고하다 보니 계급별로 각종 이익단체나 정당도 생겨났다. 하지만 인도의 민주주의가 이런 계급을 무력화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천민이나 브라만이나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스트가 정치제도가 아닌 힌두교에 기반을 둔 종교적 전통인 만큼 없어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도인의 83%가 힌두교를 믿고 있다. 종교가 변하지 않는 한 카스트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 남부의 어느 천주교 성당에 가면 미사도 카스트 별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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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몇 가지 얘기해본다면?

1999년 이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란에 입국할 때 인도에서 가져온 영화시디가 있었다. 성인물이 아닌 그냥 평범한 영화인데, 그게 걸렸다. 버리던지 봉해야 한다고 해서 봉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비닐봉투에 넣어 납땜을 하고 여권에 그런 사실을 기입하더라. 그 전까지 이란이 혁명국가, 반미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는데 막상 가서 보니 이란은 통제된 경찰국가였다. 거리에는 경찰들이 착검을 하고 경계를 섰다. 야간버스를 타면 네 번쯤 차를 세워 짐을 죄다 뒤집어 까놓고는 했다.

또 인상적인 건, 테헤란에서 TIME지를 샀는데, 잡지 여기저기가 오려져 있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그 잡지를 다시 보니까 대부분 여성이 나오는 광고지면이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보수적이다. 외국인 여성도 차도르나 스카프를 하지 않으면 거리를 다니기 쉽지 않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잠이 든 외국인 여성의 스카프가 벗겨졌다. 그러자 기사가 차를 세워서 다가오더니 자는 사람을 드라이버로 쿡쿡 찔러 깨웠다. 스카프 제대로 하라는 거다.

‘에스파한’이라는 이란의 유명한 대학을 방문했는데, 경찰이 몰려오더니 나를 잡아갔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 구경한 것뿐인데 왜 잡아가느냐고 영어로 지랄지랄을 했다. 물론 그들은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경찰도 답답했는지 그 대학 영문과 학생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 학생이 경찰서에 들어오면서 덜덜덜 떠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제대로 통역이 되지 않았다. 다시 경찰이 교수를 데리고 왔다. 그제야 통역이 됐다. 대학교수에 말은, 외국인이 이란의 대학에 들어가려면 대학총장과 해당 경찰서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가 나를 도와주겠다며, 대학 옆에 있는 이슬람정원에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간 거라고 해명하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런데 내 반골기질이 발휘되어 ‘무슨 소리냐, 나는 대학에 구경하러 간 거’ 라고 제대로 통역해 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아마 교수가 자기 생각대로 통역했나 보다. 결국 훈방조치 됐다. 물론 지금은 그런 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참, 인도에서도 재미있는 일을 겪었다. 9.11 당시 인도에서 겪은 일이다. 인도는 이슬람이 인구의 10%라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우호적이다. 최근 어느 마을이 마을 이름을 사담 후세인으로 바꿀 정도다. 치안 안 좋기로 소문난 인도의 파티마를 갔을 때다. 마침 9.11 테러가 있었던 직후였다. 거기서 친 오사마 빈 라덴 집회를 보았다. 당시 부업으로 KBS의 <세계는 지금>에 화면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찍었다. 그런데 시위대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왔다. 보통 인도의 시위는 횃불 들고 칼 들고 죽창 들고 돌아다니는 거라 자칫하면 폭동이 되기 쉽다. 그만큼 경찰도 총 잘 쏜다. 내가 카메라로 찍고 있는 것을 보고 내 주위를 에워싸서는 “오사마 빈 라덴 진다바(오사마 빈 라덴이여, 영원하라)”를 외쳐댔다. 잘못하면 죽겠다 싶어 같이 나도 “오사마 빈 라덴 진다바”를 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위대 주동자가 같이 앞으로 가자며 나에게 머리띠를 주는 게 아닌가. 싫다고 하고 “오사마 빈 라덴 진다바”를 외치면서 도망갔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그 주동자가 경찰 발포에 의해 사망했다고 했다. 죽을 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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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100배 즐기기>, <중국 100배 즐기기>,
<손에 잡히는 세계여행-홍콩편, 베이징편> 등을 썼다.
가이드북 작가는 어떻게 하게 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나.

1999년 8월에 인도여행사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러다가 그만둔 게 2001년인데, 당시 여행정보를 모아 컨텐츠화 하면 사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지금의 아내(가이드북 앞에 나와 있는 ‘마녀-김영남’)와 곧바로 결혼하고 함께 인도로 떠나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취재활동을 하고 아내는 사진촬영을 주로 맡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사람 상대를 많이 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많이 한다. 반면 아내는 사진 촬영을 많이 하니 일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보통 여행객들은 어디를 가야 하는지, 거기를 어떻게 가는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잘지를 궁금해 한다. 가이드북 취재는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교통편의 경우는 직접 움직이면서 정보를 정리한다. 여행자들이 가는 코스는 비슷비슷하다. 그것을 압축해서 코스를 만들고 교통편을 찾아내는 것이다. 버스든, 전동차든, 기차든, 택시든 요금은 얼마나 되는지도 조사한다. 식당의 경우 해당 관광청에서 추천한 식당도 있지만 그런데는 좀 비싸다. 책에 들어간 식당의 절반 정도는 유명한 곳이지만 그냥 돌아다니다가 사람 많은 데를 들어가 보기도 한다. 숙소는 일일이 다 자 볼 수 없는 것이라 가이드북 작가라는 신분을 밝히고 취재한다. 숙소 사진을 찍겠다면 방을 찍게 해준다. 그리고 기왕이면 여행지에 대한 사전정보를 취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진도 찍고 글에서는 간단한 감상도 넣어준다. 그렇게 해서 인도가이드북 <인도 100배 즐기기>가 2003년 7월에 나왔다.

가이드북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200개 식당 중에 20개를 추천하는 건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하고자 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2년에 한 번씩 개정하려고 했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인터넷물이 아니다보니 책이 나온 뒤 주인이 마음을 바꿔 가격을 올려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어떤 주인은 자기 집이 소개가 되자 가격을 두 배로 올려 버렸다. 이러면 가이드북 작가만 욕을 먹는다. 이런 데는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다음 개정에 올린다. 이런 일도 있다. 인도의 어느 식당의 메뉴 요금대가 얼마인지 주요 메뉴에 가격을 적어 올려놨는데, 독자들은 추천메뉴로 본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찾아가서 그 메뉴만 주문하니까 메뉴에 올라온 가격만 죽 올라가더라. 그래서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 뒷얘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홍콩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다. <상하이 100배 즐기기>가 작년에 나왔다.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이 높아지다 보니 중국 관련 일이 자주 들어온다. 가을쯤에는 베이징을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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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으로 인도를 가고 취미로 여행을 했겠지만,
현재 직업인으로서의 여행도 여전히 같은 감흥을 줄까?

내 인생에서 이제 여행은 없다. 인도를 다시 간다고 해도 이미 책에 소개된 곳을 다시 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마감 때문에)하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를 보는 느낌은 거의 없다. 그냥 사람 만나는 재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실연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알았다.
앞으로 실연 얘기는 안하겠다.
만들고 싶은 가이드북이 있다면... 어떤? 어느 곳?

횡단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중국에서 터키까지 가는 포스트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 천진까지 배타고 들어가서 티벳을 거쳐서 네팔로 갔다가 인도를 거쳐서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까지 가는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인데 실제로 그렇게 여행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은 외국 가이드북을 여러 권 가지고 다닌다. 출판사에 어필을 해보고 있지만 시장 여건이 되지 않아 당분간은 어려울 듯 하다.


요즘의 배낭여행 트랜드는 어떤가.
이전과 많이 다른가?

예전에는 유적 위주로 많이 흘러갔다. 이유는 배낭여행의 주류가 학생들이었고,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아 주로 부모의 지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부모들도 좋은 거 많이 배워오라면서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 코스도 박물관 보고 유적지나 교회나 사찰 등을 다니는 거였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전 지역에서 활동성 있는 관광으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 돈황에서 막고굴을 보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사막투어를 한다거나 명사산에서 모래미끄럼틀을 타려는 사람이 많다. 네팔도 중요한 사원이 많은데, 래프팅이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가이드북도 예전에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서술형이 많았는데, 요즘은 사진이 많이 들어가고 저자 기행문 형식으로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도 들어가게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여행 씀씀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장거리 기차를 타면서 “돈 아끼려고 20시간을 앉아서 갔어요.”라는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회자됐지만 요즘엔 에어콘 있는 침대칸에서 편하게 다녀왔다고 말한다. 예전 배낭여행은 ‘아껴쓰기’ 경쟁이었다. “나 100만원으로 20일 버텼다.”가 자랑이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미덕이 아닌 세상이다. 심지어 나라망신이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특징은 예전에는 백화점식으로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특정 국가나 도시를 집중적으로 여행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유럽 7개국 14도시를 한 달에 돌아다니거나, 인도나 중국을 둥글게 돌면서 다녔는데, 요즘에는 이탈리아 여행, 프랑스 여행, 파리나 로마 여행 등 세부적으로 다니는 여행이 늘고 있다. 가이드 북도 뻬이징이나 상하이만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주5일 근무의 영향으로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는 유럽의 경우 하나의 나라 중심으로 가이드북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국의 출판시장이나 여행시장이 일본의 유행을 많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으니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행관련 서적 부동의 1위 테마는 ‘유럽’이지만 일본은 ‘이탈리아’다. ‘유럽’이 그 다음이고 ‘체코’, ‘프라하’ 순서로 이어진다.


5, 6월에 다녀올 만한 해외 여행을 추천한다면?

중국의 전통을 보고 싶다면 사천이나 운남 쪽을 추천한다. 직항편도 없고 비행기도 가끔 있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 그러다 보니 개발도 더디고 전통도 많이 남아 있다. 인구 절대다수가 소수민족이다 보니 소수민족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온다. 중국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잘 부합되지 않을까 싶다. 가족여행지로 좋은 이유는 운남은 해발 2,000m 이상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남쪽이라 항상 봄 같은 기온이다. 전통적인 목조 건축, 멀리보이는 설산, 호수들이 잘 어울린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타는 것도 좋다. 천진으로 배타고 들어가서 베이징으로 갔다가 옛날 요나라 수도인 대동에서 운강석굴을 본다. 이곳은 또 목조건축물이 잘 보존된 곳이다. 거기서 내몽고로 빠졌다가 내몽고의 수도 후허하우터에 가서 초원투어를 하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옛날 당나라의 수도인 서안(예전 이름 장안)으로 간다. 다시 란저우 거쳐 돈황 거쳐 우루무치 보고 카시가르(키르키스탄 부근)까지 대략 한 달 정도 나온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여기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를 들어가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고 인도를 가고 싶다면 비행기보다 차라리 배를 타고 중국을 거쳐 가도 비용이 비슷하게 소요될 것이다.


중국을 보면 북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여러 형태의 여행상품이 나온다.
북경과 상해를 비교해본다면?


북경은 원나라 이후의 수도다. 정말 볼거리가 풍부한 도시다. 황제권력의 중심이다 보니 남아있는 전통이 많다. 요새 상하이를 좋게 표현하고 있지만, 옛날 상하이를 소개한 자료를 보면 1920년대 프랑스의 어떤 언론은 상하이를 동양의 매춘부라고 소개했다. 일본은 상하이를 ‘마도-악마의 도시’ 라고 했다. 1960년대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상하이가 아주 건전(?)해졌다. 모택동이 3,000명의 성매매 여성들을 노동교화소로 보냈다. 상하이는 이처럼 근대역사의 흔적만 잘 남아 있을 뿐이다.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게 푸동의 야경, 와이탄의 근대건축물을 제외하고 잡히는 게 없다. 상하이 사람들은 자부심이 크지만, 그 나라 고유의 전통을 보고 싶어 하는 여행객들에게 상하이는 매력이 없다. 거품이 줄어들 것이다. 반면 북경은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도시다. 일을 하면서도 참 재미있었다. 역사책에 나오는 동네들을 보는 느낌도 있으니까 좋다.


앞으로 가이드북 시장의 전망은 어떨 것 같은가?

10년 뒤면 디지털화가 되었을 것이다. 종이 출판의 경우 지금도 디지털 컨텐츠가 되면 PMP로 볼 수 있다. ‘중국 100배 즐기기’가 1,000쪽이 넘고 무게만 1.2kg이다. 이러면 차라리 PMP가 낫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블로그의 글을 모아 가이드북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처음 가는 여행자는 호들갑스러울 수밖에 없고 자기 주관에 매몰된다. 가이드북 전문작가는 여행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똑같은 곳도 3~4번 가야 쓴다. 가이드북 작가가 여행정보를 컨텐츠로 만드는 일은 유지될 것이다. 10년 뒤면 책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컨텐츠를 만들어 제공하고 위성을 연결해 위치까지 찾아주는 서비스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호주계 가이드북의 경우 대도시 위주로 PSP용 도시 컨텐츠가 나와서 발매되고 있다. 출판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음반 발매처럼 앞으로 이렇게 변화하지 않을까.


여행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인도 혹은 중국을 여행할 때의 주의할 점은?

중국은 야간에 술집도 많고 밤문화가 발달해 활동할 여지가 많다. 인도는 사회적으로 술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어떤 주에서는 술을 먹으려면 라이선스를 따야 한다. 술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델리도 10시만 되면 인적이 끊어진다. 한국 개념으로 새벽까지 놀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인도는 밤에 할 일이 정말 없다.

중국은 인도와는 정반대 느낌이다. 인도인들이 속으로 돈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물질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중국인들은 그냥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상식만큼 좋은 가이드북은 없다.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사고 나거나 위험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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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부엉이/편집 원미동









 
Posted by 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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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9 13: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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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고 갑니다 `-`
  2. 2008.06.19 19: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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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가이드..작가..많은나라를 가보셨겠네여
    • 2008.06.19 20: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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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이집트, 네팔, 캄보디아, 인도, 중국, 일본, 홍콩, 태국... 아마도 꽤 다녔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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