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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성물기행

[性物紀行] 천안 봉서산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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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봉서산(鳳棲山)은 쌍용동과 불당동 그리고 백석동에 걸쳐 있는 낮은 야산인데, 여태 성물기행에서 다녔던 산들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산으로 그 높이가 158미터에 불과하다. 봉서산의 의미는 봉황(鳳凰)새가 사는 산이라는 의미인데, 산정의 산책로가 둥글게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가져 동네 시민들의 산책길과 운동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필자의 고향이 마침 천안인데 사실 그 전엔 잘 모르던 곳이었고, 그저 천안의 구석에 있는 시골집을 찾아갈 때 큰길이 막히면 우회해서 지나가던 길이긴 했다. 하지만 요즘 해가 바뀔 때마다 낯설게 바뀌는 곳이 천안인지라 이전에 알던 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고 사뭇 놀라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것도 취재를 하는 도중에 알았고 애초에는 전혀 모르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이 봉서산에 남근석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른 일 때문에 천안엘 내려갔다가 짬을 내러 들러보았다. 역시 정확히 위치를 알고 찾아간 것이 아니기에 조금 헤매기는 했으나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동네 분에게 물어보기는 했으나, 답하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쉽게 설명을 해주지만, 듣는 사람의 머릿속엔 그려지는 게 없으니, 제 맘대로 생각하여 발을 옮기기가 십상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매번 지나서 느끼는 것이지만 좀더 꼼꼼히 물어보고 알아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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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찻길이 새로 난 도로이다.

우선 내가 처음 발을 얹은 곳은 쌍용공원이었다. 지금의 쌍용공원은 대로를 끼고 말끔하게 조성된 시립공원으로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지만, 실은 몇 년 전만 해도 외곽의 야산과 좁은 우회로에 있는 야산에 불과했다. 아마도 쌍용공원은 그 이전부터 인접한 봉서산과 함께 구성된 인근 주민들을 위한 도시자연공원이었던 듯하다. 허나 지금은 그 야산을 뚝 갈라 큰 대로를 만들어 한 쪽은 산을 깍아 평지공원을 조성하여 새로운 쌍용공원을 만들고, 이전의 쌍용공원은 그대로 또 봉서산에 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 방문을 한 내가 추측하는 사정이고 그것과 남근석과는 별로 관련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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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조성된 쌍용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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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건너편 음식점 골목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쌍용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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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서산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쌍용배수지 공원


아무튼 이전 새 쌍용공원의 건너편의 진입로로 들어가면 작은 쌍용배수지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을 통해 산을 오르면 그곳이 바로 봉서산인데, 이는 새 쌍용공원의 육교를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으니 어디를 통해도 큰 문제는 없겠다. 그렇게 산을 오르고 나면 산의 정상은 조금의 높낮이 차이만 있을 뿐 순환되는 산책길이 이어진다. 그 길에 들어서 우측으로 이동을 하면 산의 정상쯤 될법한 곳에 봉서정(鳳棲亭)이란 정자가 있고, 이를 지나쳐 좀더 가다보면 배드민턴 코트가 있다. 이 배드민턴 코트 바로 못 미쳐 두 개의 크고 작은 남근석이 그 우뚝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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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큰 남근석은 성인남자 정도의 높이로 우람한 귀두 모양을 자랑하고 있는데,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비니 모자를 쓰고 있는 석장승 같이 보이기도 한다. 주위를 돌며 남근석을 관찰해보면 그 모양이 보는 각도마다 달라져 다양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지만, 귀두부의 한 면이 무언가의 강한 충격에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이는 한국전쟁 때 입은 총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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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뚝 서있는 남근석과 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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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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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당시 총상으로 떨어져나갔다는 자리...


이 남근석에는 전설이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한 한 여인네가 이 남근석에 찾아와 치성을 드리다가 꿈의 계시에 따라 남근석을 올라타 꼭대기에 앉았다 내려왔고 그 후로 이 부인은 아들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 소문이 퍼져 천안은 물론 충청도 일대의 아이를 갖지 못한 부녀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때문에 마을에선 이 남근석에 대해 관리를 들어갔을 정도라고...

또 다른 이야기는 일제시대 때 돌보는 사람이 없어 마을 입구에 쓰러져 있던 이 남근석을 탐낸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폭우가 내려 이를 방해했다. 이후로는 하늘이 막아준 것이라 믿은 마을 사람들이 돌보게 되고 해마다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남근석은 처음부터 봉서산 산책로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다. 약 3백 년 전 백석동 가까이의 절터에서 봉명동 개목마을로 옮겨지고 1970년대 후반 천안시의 토지구획정리 사업으로 시청으로 옮겨졌다가 천안삼거리 쪽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 남근석을 옮기자 마을에는 좋지 않은 일이 자꾸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남근석을 돌려줄 것을 진정했고, 1990년대 초반에 지금의 봉서산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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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작은 남근석 혹은 여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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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키 작은 남근석은 고깔 모양을 하고 있으나 방향을 달리 보면 포경된 귀두부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남근석은 남근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보기에는 남자의 물건의 끝부분 같이 생겼으나 이 남근석은 바로 앞의 키 큰 남근석의 짝인 여근석이라는 얘기다. 왜 그런가 하면, 자리를 몇 번을 옮기고 봉서산에 자리한 키 큰 남근석이 외롭지 않게 마을 사람들이 봉서산 아래에 있던 이 작은 바위를 옮겨와 짝을 맺어 결혼식을 올려주었단다. 이를 증명하는 듯 두 남녀근석 앞에는 네모난 상석(床石)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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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 앞에 네모난 상석이 놓여있다.

봉서산의 뒤쪽으로는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되어 토기나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래서 남근석의 근원을 그때의 시대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타까운 일은 봉서산의 남근석의 경우 여태의 다른 성물에 비해 알려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영험한 기운이나 규모 면에서는 이전의 것들에 비해 다르거나 더 작을 수 있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로 지역의 의미 있는 자료가 된다면, 비록 그 모양이 남자의 그것을 연상하게 생겼지만 민속자료로 지정이라도 하여 계획적으로 보존을 하고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회, 안양의 삼막사 남녀근석이나 서울 인왕산의 선바위의 경우는 시의 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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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과 인접한 배드민턴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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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필자가 봉서산을 찾아 사람들에게 바위의 존재를 물어보면 그것이 이야기가 있는 남근석이라고 알기보다는 그저 배드민턴 코트 옆에 서있는 특이한 바위 두 개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혹은 사전에 자료를 찾아본 바에 의하면 천안시청의 게시판에는 이 바위가 보기가 퇴폐적이니 없애버리자는 의견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게시물은 2004년이고 어쨌든 그 이후로 없애거나 없어져버리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또다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은 못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전에 바위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표지라도 세워둬 미연에 방지라도 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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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앞에 보이는 간판은 남근석에 대한 표지가 아니다.

봉서산에는 ‘미륵바위’라는 또 다른 바위가 있다고 들어 내친 김에 그 바위도 찾아보려 열심히 산책로를 도는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런 바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하게 한 아주머니와 등산로를 돌게 되었는데,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도 사람들이 이 남근석을 찾아 머리를 숙여 기원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고 하며, 바위가 몇 개 모여 있는 다른 곳에서는 무당들이 찾아 굿을 한다고도 했다. 아마도 ‘봉서산’이란 상서로운 이름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뭐 그렇다고 필자가 미신을 조장하거나 무속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또 그 절실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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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서산에 있는 봉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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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서산의 또 하나의 팔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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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공원의 쌍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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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서산에서 내려다 본 천안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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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 광덕의 이미 추수가 끝난 논바닥








* 본 포스트는 연애통신(www.yonae.com)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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