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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성물기행

[性物紀行] 북한산 자락 독박골 천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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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죠? 인연이 있으면 만날 거예요...

집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영험한 ‘천녀바위’가 있다는 사실이 난 놀랍고 신기했다. 게다가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결과 이에 대한 자료를 딱 한 개 발견했으니 이만하면 그 희소성에 가치를 두고도 싶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책(한국의 성석)에서나 인터넷 게시물에서나 천녀바위는 매우 기괴한 모양을 지녔다. 한 뼘도 안 되는 사진에서도 그 그로테스크함에 어떤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실로 눈앞에서 본다면 얼마나 감정이 울렁거릴까.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길을 나섰다.

독박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잘은 모르지만, 내가 은평구에 이사 오기 전부터 독박골이었다. 근처에 있는 독바위라는 지명은 족두리봉으로 많이 알려진 수리봉 정상에 독을 엎어놓은 큰 바위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란다. 그 근처에 있는 마을을 독바윗골이라고 불렀을 수가 있다. 혹은 구기터널이 뚫어지기 전엔 거기도 골짜기였을 테니 독바윗골이었을 수도 있다. 그랬든지 이랬든지 여전히 독박골은 구기터널 앞에 적어도 버스정류장으로는 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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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북한산 도시자연공원'이란다.
붉게 표시된 '현위치'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독박골에 내려 무턱대고 산을 올랐다. 아마도 동네로는 녹번동이 될 듯싶다. 책에 의하면 폭이 5미터요, 높이가 9미터라는데 이리 큰 바위라면 오가는 등산객 아무에게 물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즈음 높은 언덕에 오르니 멀지 않게 족두리봉을 비롯한 북한산의 여러 암봉이 보였다. 가장 가차운 족두리봉이라도 필자의 걸음으론 몇 시간은 걸릴 듯싶다. 생각 외로 쉽게만 찾아진다면 내친 김에 족두리봉 정상에 있다는 알터를 찾기로 하고 산행을 서둘렀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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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보이는 봉이 족두리봉.
알터를 찾아가기는 다 글렀다...


일단 내가 다닌 길엔 앞서 자료에서 보았던 천녀바위와 비슷한 바위도 볼 수 없었다. 해서 지나는 등산객들을 붙잡고 이래저래 생긴 바위를 보았는지를 묻고 또 물어보았으나, 천녀바위라는 이름이나 내가 말한 생김을 가진 바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산이름도 모르는 북한산의 끝자락을 두 시간이나 헤맸다. 자료엔 ‘불꽃사’ 뜨거운 이름을 가진 절이 기준 지표가 되고 있는데, 이미 20년 전의 텍스트인지라 불꽃사는 이미 자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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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다 만난 짧은 남근석.
이것도 보는 방향을 잘 잡아야 보인다.
'장군 바위' 조망명소 쪽에 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일단 하산하여 좀더 자료를 찾아보자... 하며 반쯤 포기하고 내려가려는데 생각지도 않은 기도암 하나를 만났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하고 암을 지키는 묘한 중년의 유사스님에게 물으니, 부처가 있으니 절이지요. 그런다. 혹시 불꽃사란 절을 아세요? 물으니 사뭇 놀라며, 그 절을 어떻게 알아요? 되묻는다. 뭔가 알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천녀바위를 물으니, 아니 어디서 왔는데 그걸 어찌 아슈? 하고 대답은 않고 되묻기만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얘기하니, 그거 저 넘어 있는데 내가 지금은 힘들고 해서 데리고 가주진 못하겠소. 하니 그럼 방향이라도 일러 달라 했다. 포기하고 내려가려 했다 생각지도 않은 귀인을 만난 셈이었다. 새롭게 맘을 가다듬고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스님이 그런다. 아시죠? 인연이 있으면 만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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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을 만난 기도암.
산개가 지키고 있다.
두 마리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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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의 한 편엔 제법 커다란 알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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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이 있어 미륵암(후에 밝혀짐).


스님과 헤어지고 두 시간을 더 헤맸다. 스님이 말한 정자는 찾았으나, 아니 몇 번을 스치고 지나 다른 정자도 만나고 했으나 정작 천녀바위를 만나지는 못했다. 정자만 넘어가면 보인다는데... 아무래도 천녀바위와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결국 막걸리를 먹자는 친구의 문자에 넘어가 하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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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다 특별한 인연이 없어도 만나게 되는 엄마바위
(필자 맘대로 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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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만난 기도암인
삼성암 벼락바위.



막걸리값으로 인연을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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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서 초입에 만난 코스모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다시금 독박골을 찾았다. 이번엔 반드시 찾아내리라. 생각엔 결정적으로 바위가 있을 곳만 빼고 그 주위만 맴돌았다는 추측이었다. 그러니 이젠 안돌아본 안쪽 코스만 둘러보면 될 것이다. 인연이란 하루만 가는 것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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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부근에선 이렇게 북한산의 암봉들이 보여야 한다.
즉, 이 주위를 떠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또 한 시간 이상을 헤맸다. 이게 뭔가.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책을 몇 번을 더 보고, 인터넷에 떠있는 작년 게시물을 다시 살펴보고 했지만, 도무지 천녀바위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역시나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결국에 찾은 것은 전일에 만난 다른 바위들이었다. 천녀를 만나는 것은 이리도 힘든 일이던가.

무력감을 느끼며 등산로를 헤매다 전일에 만난 스님이 산열매를 따는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맘에 인사를 하고 바위의 위치를 되물었다. 하, 내가 지금 어길 벗어나면 안 되는데... 시주 좀 하면 내 알려드리지. 주머니엔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라 어디 내밀기도 낯간지럽다. 지갑의 내용을 보더니, 땡중이라 술도 잘 먹으니 막걸리 값이나 주쇼. 그러면서 뒤로 묶은 센 머리를 날리며 서둘러 앞장을 섰다. 부적 하나 그려줘도 몇 십만 원은 받는데...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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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정자쉼터라 부른다.
전망대와의 사이에 산불진화장비 보관대가 있다.
근데 장비는 없고 보관대만 있었다.
어디 불난 것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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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오른쪽에 노랗게 풀이 죽은 숲길로 들어갔다.

스님이 앞장서서 간 곳은 그동안도 내가 몇 번은 지나친 정자였다. 혹시나 하는 맘에 기준점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번을 오르고 내리고를 했는데, 여기 무슨 천녀바위가 있다는 말인가?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는데, 스스로 땡중이라 밝힌 스님이 길도 아닌 수풀을 헤치고 내려선다. 뭐야? 길이 아닌 곳에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결국 수풀을 헤치고 내려간 곳에 그 기이한 천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워낙에 우거진 수풀속이라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발길이 끊어져 이미 길이 유실되었으리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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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숲속에 있을 거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나.
인연은 저 숲속에...


이런 데 올라면 막걸리라도 사가지고 와서 한 잔 올리고 그러는 거예요. 땡스님은 훈계 비슷하게 얘기를 하고선 사진 많이 찍으라며 민망하게 내민 막걸리 값 오천 원을 챙기고선 부리나케 기도암을 향해 올랐다. 법명이 뭐냐는 내 물음에, 땡중이 법명이 어딨어, 궁금하면 이따 들러요. 하며 따라온 산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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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베일을 벗는 천녀바위.
이것도 좀 내려와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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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온 미륵암의 개들.
노란놈만한 흰개가 하나 더 있다.
마치 천녀바위에 뭔가를 기원하는 듯 보인다.


묘한 기운의 천녀바위, 못 봤으면 말을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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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천녀바위... 뭔지 모를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적어도 20년 전엔 이곳 아랫녁엔 불꽃사란 절이 있었다. 그리고 더 10여 년 전엔 천궁사란 절이 바로 아래 있었더란다. 인근 기도암에 비해 더 영험하다는 이 천녀바위에 늘상 기도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더런 중 70년대 말 미신타파를 위한 정화사업에 의해 바위 아래의 크고 작은 절들을 폐쇄하면서 천녀바위를 찾던 발길이 줄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길조차 유실이 되어 단골 등산객도 모르는 유명무실의 바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전의 사진을 보면 나름 바위터가 넓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한두 사람만 서있을 정도의 폭만 남겨져 있을 뿐 바로 아래는 경사져 있어서 자칫 실족이라도 했다간 크게 다칠 우려가 있다. 오랜 동안 사람의 발길이 없고 20년을 바람과 비에 터는 깎여 내려갔을 것이다. 이리도 기이한 바위가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노릇이지만, 결과적으로 정화사업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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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감추어져 있는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바위 앞엔 촛불을 키고 제물을 올렸을 작은 단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위를 뚫고 자라 던 작은 나무줄기는 이미 고사한 듯 보인다. 천녀바위를 유명하게 했던 것은 마치 천녀가 입은 옷의 불규칙한 주름 같은 바위의 기괴한 형상과 더불어 우측 편에 자리한 남근과 여근의 모양이다. 게다가 음각한 듯이 바위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이 그런 모양을 띄었으니 더욱 신기한 따름이다.

바로 옆에 자리한 여근 부위는 아래위로 두 개에 그 중간에 항문을 연상케 하는 동그란 구멍이 있으니, 바위 하나에 남근 여근을 모두 가져 더욱 영험함을 기대했던 것 같다. 또한 묘한 것은 어느 정상에 있는 커다란 바위보다 더 큰 기운과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수풀이 우거진 중턱에 이렇게 기묘하고 거대한 바위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한 일이다.

사진으로 보면 그 규모가 느껴지지 않지만 직접 바위를 맞닥뜨린다면 모르지만 심하게 심약한 사람이라면 바위를 제대로 처다 보는 것조차 두려워질 수도 있다. 혹여 누군가라도 바위에 무슨 기운이 느껴지냐고 따져 묻는다면, 비록 16년간은 아니더라도 몇 달 이런 것들을 찾아다닌 사람으로 직접 보지 못했으면 말을 말라고 ‘달인’처럼 얘기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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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이 있었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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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바위의 정면.
천녀가 입었을 옷자락의 주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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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마치 금형틀처럼 음각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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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곳곳에는 저 두눈 처럼 보이는 뭔가가 붙어 있다.
상부는 묘하게도 귀두를 표현한 듯 선이 져있고
사정관 끝의 단면처럼 그 끝도 동그랗게 패여 있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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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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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부 상부.
위에서 보면 정상위, 아래로 보면 후배위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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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에는 초록의 이파리가 나있었던 나무줄기.
발길이 끊어지고 바위의 영험한 정기도 사라졌는지
줄기는 말라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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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의 위치는 독박골 거북약수터로 올라 녹수약수터 글자 위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는 '산불 진화장비 보관대'가 있는 정자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는 위에 게재된 사진처럼 길이 없는 수풀 쪽으로 내려가면 천녀를 만날 수 있다.
독박골은 지하철 3호선 불광역에서 내려 구기터널 방향으로 가면 된다.
버스정거장 이름은 독박골.







* 본 포스트는 연애통신(www.yonae.com)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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